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공공기관의 또다른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적자를 감수하고 정규직을 늘려 공공기관 평가 '우수' 등급을 받은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정규직 확대를 명목으로 인건비를 일단 과도하게 편성한 뒤에 남은 금액을 기존 정규직 퇴직금 충당에 쓴 곳까지 나타난 것이다.
24일 미래통합당 정책위의장인 이종배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고용정보원 직원들의 퇴직금 충당금은 2년새 10배로 늘어났다. 지난 2018년에 정규직 인원을 전년 대비 43명, 2019년 57명을 뽑는 과정에서 인건비를 실제 필요한 것보다 과도하게 요청했고 다 쓰지 못한 인건비를 퇴직금으로 적립한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총 인원(2020년 기준)은 404명이다. 총인원 중 25%에 달하는 정규직이 최근 2년새 늘어난 셈인데, 인원증가를 감안해도 퇴직금 충당금 증액은 과도한 편이다.
이종배 의원이 8월 결산국회를 맞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고용정보원이 작년 인건비로 쓴 실제 금액은 221억6300만원이었다. 그러나 예산으로 받은 인건비는 240억2800만원이었다. 남은 돈 18억 6500만원은 한국고용정보원 직원들의 퇴직급여충당금으로 고스란히 적립됐다. 2017년에 퇴직금 충당금으로 넘어간 인건비 잔액은 2억 6783만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0억 1175만원 수준으로 대폭 늘었다.
이마저도 처음에 고용부가 246억원을 편성한 걸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줄인 것이다. 한번 삭감했음에도 크게 남을 만큼 계상했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이 의원은 "국민 혈세를 과다 계상하고 불용액을 발생시키는 건 정작 예산이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없게 한다"며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사업은 면밀히 검토해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도록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현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급격한 정규직화 → 공공기관 평가 상승 → 퇴직금 증가의 고리가 가능해진 것도 문제다. 정규직을 크게 늘리면 공공기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성과급을 많이 받을 수 있고, 결국 더 많은 퇴직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리가 형성돼 있다는 얘기다.
[김태준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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