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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악화일로로 치닫는 남북 관계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인데요, 대북 민간교류의 창구 역할을 해 온 현대아산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윤호진 기자입니다.
【 기자 】
평안북도 선천이 고향인 최명옥 할아버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북한군에 동원됐다가 스스로 남측으로 넘어왔습니다.
▶ 인터뷰 : 최명옥 (79세) / 남북 이산가족
- "국군부대 찾아 들어가서 (반공)포로가 됐으니까. 가족이야 이북에 그냥 있는 거지."
고향 집에는 어머니와 여동생 3명이 남아 있었고, 19살 청년은 그렇게 가족의 생사조차 모른 채 팔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막내 여동생과 극적으로 연락이 닿으며 편지를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을 받았습니다.
▶ 인터뷰 : 최명옥 (79세) / 남북 이산가족
- "오래 살아가면 금강산에서라도 한번 얼굴을 맞댈 수 있지 않겠느냐. 그 염원과 그 희망, 간절히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어요."
최명옥 할아버지처럼 이북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은 약 9만여 명.
이산가족 상봉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98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
분단의 상처로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이들에겐 그나마 위안거리였습니다.
이 유일한 대북 민간교류를 통해 지금까지 196만 명이 휴전선 넘어 우리 땅을 밟았습니다.
아직도 고향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보겠다며 금강산 관광을 기다리는 사람은 3만 명이 넘습니다.
남북 당국의 양보 없는 대립 속에 이산가족의 속앓이만 깊어가고 있습니다.
MBN뉴스 윤호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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