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수(33)는 영화 ‘초능력자’ 이후 전쟁 영화를 택했다. 20일 개봉한 ‘고지전’은 1953년 한국 전쟁 말기 휴전을 앞두고 동부 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해발 650m 높이의 백암산에서 6개월 동안 고생해야만 하는 도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남자 연기자로서 한국전쟁에 대한 영화는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어하는 장르가 아닐까”라며 “촬영을 하면서 이런 모습이 또 있었구나. 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웃었다.
애록고지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 중위 ‘김수혁’, 그에게는 ‘전쟁광’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카리스마가 숨겨져 있다. 2년 넘는 시간동안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온 비결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유약한 면이 있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전혀(강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수혁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요인이 더 컸다. 내가 김수혁을 표현하는데 재밌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힘들었고, 고생했다.”(웃음)
고수는 극 초반 2~3회차 촬영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비탈길을 오르고, 폭탄 사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체력적으로는 자신 있었지만 진흙탕 속에서 상황은 악몽 같았다.
“진흙탕 속에 들어가서 진흙범벅이 됐는데 자잘한 나무가시가 옷 속으로 들어와서 몸을 찔렀다. 흙탕 밖으로 나와 있을 때도 그 찌르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그냥 웃음만 나오더라.”(웃음)
스태프가 그 위에 물을 뿌려주는 방법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임시방편이었다며 당시 기억이 나는지 고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시가 북어포의 그 얇은 가시 같았다”며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 때문에 피부병도 생겨 병원을 갔다”고 회상했다.
유약한 수혁이 2년 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올 때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다. 악어중대에 지휘자 사망사건과 북한군 내통 사실을 조사하러 온 중위 ‘은표’(신하균)와 재회한다. 이 때 의정부 전투에서 두려움에 떨며 십자가를 들고 주기도문을 외우던 이등병 수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은표와 재회하는데 수혁이는 어떤 모습일까, 변한 수혁이의 마음 안에는 뭐가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2년의 시간을 채우는데 고생했다. 그간의 과정을 담아두고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 변화들이 어떻게 하면 표현될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고수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장훈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변한 수혁이 시체를 바라보는 눈이나 은표를 바라보는 눈빛 등은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나온 장면이다. 물론, 최대한 표현을 했으나 아쉬움도 있다.
“누구나 다 자기가 연기 한 모습을 보고 만족한 사람은 없을 거다. 처음 봤을 때는 시험을 보고 난 다음에 답을 채점하는 기분이고, 화면에서는 내 모습만 보인다. 두 번째 봤을 때 ‘아! 고지전이 이런 내용이었구나’라고 알게 됐다.”(웃음)
그는 “다시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어리고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영화를 찍고 나서 상영을 할 때 떨리고 긴장이 된다”며 솔직했다.
수혁이 은표를 향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인상 깊다. 실제 모습이 반영된 것인지 묻자 “실제로는 비슷한 부분이 없다”며 “화를 안 내는 사람은 없지만 되도록이면 화를 내지 않으려 한다”고 미소 짓는다.
4월에 촬영이 끝났으니 3개월을 쉬었다는 고수. “작품을 고르는 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제대하고 3번째 작품이었는데 빨리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욕심냈다. “드라마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오는데 잘 보고 있다. 운명 같은 작품을 또 만나고 싶다.”(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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