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8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엑스 재팬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20녀년의 기다림 탓인지 전국 각지와 국내에 거주하는 일본팬 등 약 1만500여명(주최측 추산)의 관객들이 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엑스재팬의 공연은 예정보다 약 한시간 정도 늦은 오후 9시에 시작됐다. 이날 공연에 모인 1만500여명의 팬들은 엑스재팬에 대한 그 광신적인 믿음을 여실히 보였다.
○ 한참 지난 전성기, 바뀐 멤버들
1시간의 기다림 끝에 공연이 시작되고 엑스재팬의 보컬 토시(47)가 중년 남성다운 후덕한 풍채로 무대에 올랐다. 가죽재킷에 하늘거리는 흰 셔츠에 공연 내내 한 번도 벗지 않은 선글라스, 깔끔하게 세팅한 헤어는 로커기 보다는 엔카 가수 같은 모습이었지만 날카로운 고음과 샤우팅은 여전했다. 기타리스트 파타(47) 역시 수염을 길러 노숙한 인상을 줬다.
신기할 만큼 변하지 않은 리더 요시키(47)와 루나시(Luna Sea) 멤버였다가 엑스재팬에 합류한 기타리스트 스기조(43)가 비주얼록 밴드의 대명사 엑스재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전성기는 분명 한참 지났다. 요시키의 드러밍은 분명 과거에 비해 날카로움이 떨어졌고 토시의 목소리는 공연 막바지에 갈라지기 일쑤였다. 파타의 기타는 과거 엑스재팬 노래들의 스피드를 굳이 쫓아가려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요시키는 공연 막바지 “히데와 한국에 오고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는 오늘 꿈을 이뤘다. 히데, 타이지도 우리와 함께다”고 말해 관객들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엑스재팬의 기타리스트 였던 히데는 1998년 5월 2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타이지 지난 7월 17일 사이판 섬에서 자살해 충격을 줬다. 20여년만에 엑스재팬이 눈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전성기 시절은 본인 자신들조차도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 “우리는 엑스”(We are X)‥‘광신도’들
1998년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 엑스재팬의 앨범은 비공식적으로 100만장 이상 팔렸다고 한다.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팀이기도 한 데다가 현재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은 탓에 엑스재팬은 신비 속에 존재하는 밴드였다. 이 탓에 우리나라 팬들에게 엑스재팬은 일종의 종교 같은 이미지였고 요시키는 교주 같은 역할을 했다.
두 시간 동안의 공연에서 엑스재팬은 ‘사일런트 질러시’(Silent jealousy) ‘드레인’(Drain) ‘러스트 네일’(Rusty Nail) ‘엑스’(X)등 전성기 시절 히트곡과 신곡 ‘본 투 비 프리’(Born to be free), 엔딩곡으로 자신들의 대표적인 히트곡 ‘엔드리스 레인’(Endless rain)과 ‘아트 오브 라이프’(Art of life) 등을 연주했다.
이날 공연에서 연주된 거의 모든 곡들이 관객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소위 떼창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관객들의 단체 액션으로 유명한 노래 ‘엑스’(X)에서는 어김없이 모든 관객들이 공중에 점프를 해 허공에 양 팔로 X자를 만들었다.
이날 공연장에는 엑스재팬 상당수의 관객들이 엑스재팬 티셔츠를 입고와 ‘광신도’ 임을 과시했으며 짙은 화장과 빗자루 머리로 상징되는 엑스재팬의 코스프레를 하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도 일부 목격됐다. 앙코르 직전에는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파도타기를 하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 1시간 늦은 시작‥X같은 매너
이날 공연은 약 1시간 가량 지연돼 오후 9시에 시작됐다. 고질병처럼 반복되던 내한공연 팝 스타들의 지각병이 최근 눈에 띄게 개선 된 탓에 이날 엑스재팬의 공연 지연은 관객들을 추억에 잠기게 할 정도였다.
실제로 엑스재팬의 공연 지연은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2008년 3월 도쿄돔에서 열린 엑스재팬의 재결성 공연은 무려 2시간 30분이 지연됐다. 이 같은 밴드의 습성을 잘 아는 관객들은 비교적 참을성 있게 공연을 기다렸다. 충분히 엑스재팬 다운 태도라는 것.
공연 중 멤버들의 태도 자체는 매우 성실했다. 토시는 “감사합니다” “소리질러” 등 우리말을 간간히 섞어 가며 관객들의 흥분을 유도했고 요시키도 “사랑해”를 외치며 객석으로 뛰어 들었다. 또 요시키는 드럼과 피아노 연주를 번갈아 가면서 하는 솔로 무대에서 ‘아리랑’을 연주하기도 했다.
특히 앙코르 무대 직전 요시키의 깜짝 퍼포먼스는 한국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색동 치마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오른 것. 요시키는 보컬 토시의 팔의 매달려 부끄러운 듯 몸을 꼬았지만 목소리나 행동, 외모 등이 여성스럽기로 유명한 요시키에게 여자 한복은 썩 잘 어울려 보였다. 관객들을 만나는 순간만큼은 이들에 대한 충분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 역시 엑스재팬 다운 매너다. 20여년을 기다리게 했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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