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한 외모에 강단 있는 카리스마, 연기할 때 뿜어져 나오는 절제된 성숙함.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던 여배우, 김지호를 만났다. 그의 복귀를 반기는 듯, 쌀쌀했던 기온이 그를 만날 때 쯤 포근하게 풀렸다.
약속 시간보다 10여분 일찍 도착한 김지호가 털털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기다리는 취재진을 배려해 서둘러 꽃단장을 시작하는 그녀, 스타 여배우답지 않은 친숙함과 인간미가 느껴졌다.
지난해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로 대중 앞에 잠시 선 김지호는 사실 스크린 보다는 브라운관에서 더 익숙한 배우다. 그의 반가운 스크린 나들이에 팬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가 오랜 공백을 깨고 선택한 작품은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
’부러진 화살’은 지난 2007년 일어난 석궁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법정 실화 극이다. 김지호는 작품속에서 석궁 사건을 둘러싼 불공정한 재판 과정을 파헤쳐 알리는 열혈 사회부기자 장은서 역을 맡았다.
“특별한 사회적인 사명감을 갖고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정지영 감독에 대한 신뢰가 워낙 깊었고, 술술 읽혀나가는 시나리오에 반했어요. 기자 캐릭터요? 기존의 ‘전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어요. 여기자라고 무조건 여성성도 없고 드세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요. 사회부 기자다운 근성과 열정, 털털하면서도 내재된 여성성을 조화시키고 싶었죠.”
김지호가 맡은 장은서는 대립하고 있는 사법부와 석구테러의 주인공 남자, 어느 한 곳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조명한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본질, 양측의 대립 입장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은서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파헤친 사건이 궁극에 다다랐을 때 윗선의 압력으로 모든 것이 백지화됐을 때…. 정말 화가 많이 낫죠. 사실 작품이 끝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꼭 특정 집단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 그간 우리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 진 않았나, ‘불편한 진실’ 을 애써 외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요. 우리 사회 곳곳에 ‘책임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죠.”
“사실 미디어에 있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일종의 ‘책임의식’ 과 관련된 거겠죠. 배우로서가 아닌 엄마로서 사실 화가 날 때, 난감할 때가 많아요. 가족 연속극, 미니 시리즈 등 각종 드라마는 물론 영화, 시트콤 등 TV를 켜면 어린 딸아이에게 보여줄 프로그램이 없어요. 아이가 부모에게 소리치고, 친구들끼리 서로 거친 용어를 사용하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도 많죠. 중‧고등학교 이상만 올라가도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이하 어린이들은 무방비상태에요. 스펀지처럼 바로 흡수하죠.”
그의 어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강단 있었다. 이전까지 봐왔던 배우 김지호의 모습과는 또 다른 엄마 김지호의 모습이었다.
“워낙 강요하는 성격도, 뭔가를 주입시키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하지만 당연히 아이에게 ‘정직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남을 아프게 하지 마라’ 등 기본적인 이야기는 하죠. 하지만 그런 말을 아무리 해도, 사실상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현실은 ‘우격다짐’, ‘욕설’, ‘폭행’ 이 난무하고 있어서 힘이 빠져요. 우리 모두가 좀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특히 미디어 관련 분야에 계신
그와 열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창 밖에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선이 곧바로 밖으로 향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묘한 여운이 느껴졌다. 배우 김지호는 반가웠고 엄마 김지호는 신선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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