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카메오도 아니건만 공식석상에 나선 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에서 맺은 정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다. 더욱이 배두나는 CF감독인 오빠를 정 감독에게 소개시켜 줬다. 배씨는 영화의 좋은 의미에 동참하고자 뮤직비디오와 예고편 제작을 맡았다. 전체 영화를 ‘사회’와 ‘사랑’, ‘시간’을 말하는 건축가라는 3가지 소재로 축약, 2분 남짓한 영상으로 정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를 함축해냈다.
‘말하는 건축가’는 놓치면 아쉬울 영화다. 건축의 ‘ㄱ’자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건축가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한 편의 강연을 듯는 느낌이랄까. 날 것의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한국 건축의 문제점과 정 건축가가 지향한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30여 개의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및 순천과 정읍, 서귀포 등에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하며 나눔과 사랑이 뭔지를 알리고 떠난 정 건축가를 소개하는 방식이 매력적이다.
정 감독의 힘이다. 도시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당초 빌딩 한 채를 완성하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다. 주위의 추천을 받고 정 건축가를 만났고, 빌딩이 세워질 때를 기다렸으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마침 ‘정기용 건축전’이 준비된다는 사실에 카메라를 돌려 잡았다.
다큐멘터리를 처음 찍게 된 정 감독은 이날 GV에서 “보통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주인공을 사회적 배우라고 하는데 이들은 스스로 대본을 만든다”며 “정기용 건축가는 카메라와 감독을 의식하며 자신의 상황이나 말이 어떤 식으로 기록되고 있는지, 관객에게 어떻게 메시지가 전달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건축은 문화라는 평소의 소신을 전했다”고 밝혔다.
물론 배운 것도 많았다. “포기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이 사회적 배우가 영화에 자꾸 뭔가를 채우고 있었다. 초반에는 시나리오와 달라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점차 내가 개입하거나 요구하는 것 없이 지켜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해탈했다.
배두나는 약 10년 전 기억 때문인지 발끈했다. 정 감독의 생각이 변했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분이셨거든요. 추운 겨울날 3시간 동안 떨면서 촬영했고, 앵글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찍어주셨어요.”(웃음)
정 감독은 “배두나는 감독을 확실히 믿어주는 배우”라고 추어올린 뒤, “정 건축가를 통해 사회를 알게 됐는데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필요한 에너지가 가득 충전되는 시간이었다. 추운데 배우들을 서 있게 하지 않고 함께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해명하며 웃었다.
그는 또 “배두나는 천상 배우”라고 표현하며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언제나 무심한 것 같다. 두한씨가 훨씬 친절하고 따뜻하다”는 말로 배두나를 샐쭉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배두나는 “내가 조금 무심한 것 같지만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나는 굉장히 예민해서 내 안의 생각들을 버리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다”고 고백했다.
“마음을 안 주고, 생각도 잘 안 하려고 해요. 하지만 연기하면서는 퐁당 던질 수 있죠. 나이 들면서 사람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래서 사람과 건축, 자연을 얘기하는 이 영화가 마음에 와 닿았나 봐요.”(웃음)
배두나는 또 “오빠는 천사가 맞다”며 “배우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오빠는 든든한 지원자다. 좌절할 때도 많은데 밤을 새서 울 때가 있다. 그 때 오빠는 아무 말도 않고 내 옆에 계속 나를 지켜준다”고 자랑했다.
그는 할리우드의 워쇼스키 형제, 독일의 톰 티크베어 감독과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서는 “즐길 건 모두 다 즐기고, 쏟아낼 건 다 쏟아냈다. 잊지 못할 2011년을 보냈다”며 “내 안이 청소된 것 같은 기분”이라는 소감도 전했다.
한편 ‘말하는 건축가’는 3월 한 달 내내 문화계 각 분야 최고 인사들과 함께 하는 GV를 이어간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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