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은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극본자 진수완 작가를 만났다. 이렇게 ‘뜰’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진 작가는 ‘해를 품은 달’을 내려놓은 지금, 큰 짐과 부담을 내려놓은 기분이란다.
“모든 작품이 그래요. 시청률이 잘 나오면 잘 나오는 대로,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부담감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더했죠. 40%대에서 30%대로 떨어지면 왜 그랬을까 분석하게 되고...”
적잖은 부담감에 못 하겠다 고사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순수 독자일 때의 느낌이 좋아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작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컸다. 정은궐 작가의 ‘해를 품은 달’은 물론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들’ 등 전작은 이미 베스트셀러였다. 진 작가는 “원작과의 비교와 캐스팅 논란 강도는 원작의 인기에 비례하죠. 정은궐 작가의 작품 자체가 이미 팬덤이 있기 때문에 잘 해야 본전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출발했다”고 털어놨다.
가장 큰 부담은 로맨스였다. 오죽했으면 “자다가 가위눌린 적도 있을 정도로 로맨스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며 한숨을 쉰다. “분량 오버로 몇 씬을 잘라내야 할 때도 로맨스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감독님께 부탁했을 정도”라 한다.
주인공의 로맨스를 살리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고 주변 인물의 분량이 축소된 점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작가로서 갖게 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진 작가는 소설 속 운(송재림 분)과 양명(정일우 분)의 비중이 달라진 데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덧붙이면서도 줄거리를 살리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디테일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진 작가의 각색 포인트는 개연성, 대중성, 캐릭터, 스토리의 힘, 정치코드 총 다섯 개였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도 쉽지 않은데 다섯 마리 토끼라니. 각색 과정이 쉽지 않았으리라. 더욱이 한창 대본 작업을 하고 있을 시기, SBS에서는 조선 세종대 한글 창제 미스터리를 그린 ‘뿌리 깊은 나무’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다. 진 작가는 “가상의 왕이고 판타지라고 해도 개연성만은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 사극 집필임에도 우직한 승부수였다.
“원작 자체는 고급스럽고 마치 묵향이 나는 수묵화 같은 느낌이었죠. 하지만 전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잔잔한 묵향은 아쉽지만 포기했습니다. 액티브한 느낌으로 흡입력을 갖기 위해 외척 세력을 전면에 드러냈죠.”
훤(김수현 분), 연우(한가인 분), 양명 등 중심 캐릭터를 살리되 형선(정은표 분), 호판 윤수찬(김승욱 분), 홍규태(윤희석 분) 등의 캐릭터를 전진 배치시켜 원작의 서사를 이어갔다. 가상의 왕 시대인 만큼 커다란 정치적 담론을 이끌어내기보다 훤 캐릭터를 개혁 의지를 가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왕으로 그려냄으로써 정치코드를 완성했다.
진 작가는 “원래 20부 결말에 여러 가지를 담고 싶었다. 특히 윤대형(김응수 분)이 그 자리에서 죽는 게 아니라 왕과 담론을 펼치는 장면을 그리고 싶었는데 분량 상 대본에서 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신 형선이 훤의 가야금 연주를 립싱크 하는 가운데 훤과 연우가 키스하는 풋풋한 장면으로 ‘해를 품은 달’ 대망의 마침표를 찍었다.
“전작 ‘경성스캔들’도 그렇지만 ‘해를 품은 달’은 그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 같아요. 이제는 제 것이 아닌 느낌이랄까요? 좋은 드라마를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차기작이요? 아직 구체화된 건 없는데, 진짜 제 얘기가 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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