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역시 연기하는 일을 업으로 지닌 여배우일 뿐, 오랜 친구와 ’조롱’(친한 사이에서 흔히 놀리는 장난)하며 장난치기 좋아하는, 스케줄 사이사이 밀린 집안일에 바쁜 결혼 8년차 주부이자, 일과 출산·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여자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내려놓고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돌아오는 첫사랑의 아이콘, 한가인. 아주 특별할 것만 같은 그녀의 지극히 평범한 영화·연기 그리고 일상에 대한 단상을, 그 중에서도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매운탕’처럼 매콤한 인생 이야기를 담아봤다.
최근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한가인에게 ’건축학개론’ 예상 스코어(관객수) 얘기를 묻자 은근한 미소부터 짓는다. 지난 22일 개봉한 ’건축학개론’은 개봉 첫 주말동안 56만5331명을 불러모으며 누적관객 71만6992명을 기록, 흥행가도에 청신호를 밝혔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무엇보다 ’건축학개론’ 속 한가인에 대한 반응은 ’해품달’ 때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연기는 물론, 첫사랑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에 관객들의 호응이 심상치 않다.
"연기로써 인정받겠다는 마음보단 전체적인 느낌이 좋아 선택한 작품인데, 영화에 대한 반응도 좋고 부수적으로 연기에 대한 칭찬도 들려오니 기분 좋아요." 배우로서 연기력을 칭찬받는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역으로 생각하니 ’해품달’ 초반 여론에 대한 마음의 상처도 만만치 않았겠다 싶다.
삐삐, 힙합바지 등 90년대 후반 유행했던 아이템에 대한 기억만큼이나 아련한 건 당시의 풋풋했던 마음일 터. 한가인은 "그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데 대한 아련함, 뒤로 갈수록 가슴 찡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영화 속 그 시절을 추억했다.
서연이 매운탕에 소주 댓 병 걸치고 정신을 잃은 장면에선 첫사랑은 늘 상상 속에서처럼 완벽할 것이라는 편견이 여지없이 깨진다. 서연의 걸쭉한 욕설은 ’건축학개론’ 속 소소한 재미이자, 한가인을 단아함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돌파구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단아한 역할은 아니니까요. 감독님은 제 평소 모습에 이미 ’깼다’고 하셨죠.(웃음) 평소처럼 말도 안 되게 재미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어요."
서연이 같은 욕설만 반복한 게 아쉽다는 말에 "솔직히 나 역시 아쉬웠다"면서도 "하지만 서연의 상황에선 어떤 군더더기를 붙이는 것보다, 반복된 그 욕설이 제일 맞는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극중 30대 중반의 서연의 삶은 보기보다 파란만장하다. 애꿎은 매운탕과 시비가 붙었을 정도로. 실제 한가이도 살면서 ’매운탕’ 같은 상황을 겪은 적이 있을까.
"너무 많이 겪었죠." 서른한 살 ’품절’ 여배우가 느끼는 실질적인 고민으로 시작된 ’매운탕’ 스토리는 20대 후반 갑작스러웠던 3년 가량의 공백기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쁜남자’로 워밍업을 마친 한가인은 ’건축학개론’으로 스크린 복귀를 앞둔 시점, ’해를 품은 달’로 먼저 대중과 만났다. 데뷔 첫 사극에서 맡게 된 캐릭터는 기억을 잃은 무녀. 사실상의 1인2역이었다. 것도 모자라 상대는 6살 연하의 국민스타 김수현. 캐스팅 보도 직후부터 드라마가 종영하는 순간까지, 애석하게도 한가인은 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가인은 "’해품달’ 전까진 안티를 별로 크게 느끼지 못해서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다"고 안티팬에 대한 심정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연기력 논란에 대해선 "비판과 쓴소리는 좋은데, 무조건적인 비난은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면서도 "내게 깊이있는 무언가가 부족했나 싶더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표정이 토마스기차를 닮았다 해 생긴 반응에 대해서는 "스태프들도 조롱하더라"고 웃음으로 받아치면서도 자신의 연기에 대한 반성도 잊지 않았다.
"망언처럼 들릴까봐 걱정인데, 눈도 눈동자도 큰 편이에요. 평소 말 할 때 눈이 커지는 편이라 (연기를 위해)고치려 노력했는데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눈을 신경쓰다 보니 아무 것도 안 되더군요. 다 망치겠다 싶어 결국 드라마 중간엔 마음을 비웠죠."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차기작을 위해, 한가인은 지금도 눈버릇(!)을 고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솔직히 2세에 대한 압박이 심해요. 이젠 아기를 낳아야하나 하는 고민을 해봤는데, 당장 아기를 낳으면 2~3년간은 활동하기 힘들어질테고, 그렇게 되면 활동의 폭이 줄어들 수도 있겠죠. 지금으로선 작품 하고 싶은 욕심이 더 큰 게 사실이에요."
서른하나. 누구에게나 소중한 인생의 지점이겠으나 기혼의 여배우에겐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시기다. 특히 데뷔 초 짝(연정훈)을 만나 평생을 약속했고, 이후 예기치 못한 공백을 가졌던 탓에 실질적으로 활동한 시간이 연차에 비해 적은 그녀이기에. 지금 한가인이 느끼는 일에 대한 갈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중에겐 핫 스타지만 일상에선 여전히 자연인 김현주의 삶을 살고 있다는 한가인. 인터뷰 말미, 김현주 그리고 한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김현주에게는, 음… 왠지 그녀의 정체가 곧 드러날 것 같은데(웃음)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대중에게)보여드리고 싶은 욕망이 많았지만 작품 외엔 이야기할 수 있는 여건도, 기회도 없었던 것 같네요. ’사람들이 왜 나를 여성스럽고 참하다고만 생각하지?’ 궁금했는데, 이전 작품 그리고 CF 이미지가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 그런 의문을 갖지 말고,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다 싶어요."
"하하. 고생이 많습니다. 행복한 일도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고. 항상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느낌인데, 그것 또한 즐겼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그게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어려운 일이었다면, 지금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재미있게 탈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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