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구에게 1980년 5월, 전라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술술 풀어놓을 것 같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에서 어머니의 복수를 하려는 조직폭력배 곽진배를 연기한 그는 이 영화와 장장 4년을 함께 했다.
4년 전 정치 외압으로 제작 투자가 철회되고, 배우들과 감독도 하차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중앙행정부서가 허가하지 않아 촬영을 접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구는 우여곡절 끝에 이 영화를 세상에 내보내게 된 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와 비슷할 만큼 기대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격양돼 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작품과 다른 느낌인 건 분명하지만 큰 흥행 기대를 하고 있진 않다”고 했다. 좀 더 분명하게 얘기하자면 기대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다. 진구는 음식점에 걸려있는 주인공 4인방(진구, 한혜진, 배수빈, 임슬옹)이 담긴 ‘26년’ 포스터를 가리키며 “4년 전이었다면 아마 기대감도 드러내고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다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연기가 많이 기억이 난다”며 “내 역할은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무뎌져서 그런 것 같다”고 웃었다.
마음속에 바라고 정한 흥행 숫자도 있긴 하지만 허탈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 선뜻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애착과 열정은 절대 무뎌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카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곽진배가 너무 되고 싶었던 그는 지난 여름 오른쪽 눈썹 위부터 볼까지 흉터 자국 분장을 유지하고 살았다. 그 결과 그 흉터만 빼고 얼굴이 검게 탔고, 아직까지 눈썹 일부분이 없다. 묵묵히 자신이 맡은 바 역할을 인정 받아온 진구답다. 영화 ‘마더’에서 포스터에 이름도 나오지 않았건만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알렸던 배우가 아니던가. 재밌는 건 제대로 된 연기력을 선보였던 진구가 ‘마더’와 ‘26년’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던 시점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묵혀왔던 그의 연기력을 또 한 번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크다.
진구는 “출연계약을 했는데 영화사에서 정말 방대한 자료를 줘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기억했다. 한동안 중단되고 제작이 재개됐을 때 “제작사에서 다른 자료를 건네줬는데 그 전 자료와는 또 다른 내용이었다”며 “‘아니, 또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놀라며 자료를 분석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26년’에 대해 “교육적 차원에서 꼭 봐야 할 영화”라고 했다. “‘남영동 1985’를 보고 답답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그는 “영화를 보고 답답함이 아니라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26년’ 역시 또 다른 미안함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바랐다. 진구의 표현을 빌자면 “잊지 말고 기억했으면 하는 역사적 사실”이 담겼다. 솔직히 1980년 5월의 일을 잘 알지 못했다는 80년 7월생 진구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나누고 싶어 했다.
‘26년’은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연관된 국가대표 사격선수, 조직폭력배,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바로 그날,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펼치는 극비 프로젝트를 그린 영화다. 다수의 사람들이 소액을 기부해 제작비를 충당한 소셜필름메이킹 작품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