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7천여명의 팬들이 이 무뚝뚝한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모였다.
특유의 파란색 반짝이 정장에 파란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에 나타난 엘튼 존은 피아노 앞에 앉아 ‘더 비치 이즈 백’(The bitch is back)을 부르며 8년 만에 내한공연을 시작했다. 이어 ‘베니 앤 더 제츠’(Bennie and the Jets)가 공연되고 그는 “한국에 와서 기쁘다”는 짤막한 인사만을 한 채 ‘그레이 실’(Grey Seal)’과 ‘리본’(Levon), ‘타이니 댄서’(Tiny Dancer) ‘빌리브’(Believe) ‘모나리자 앤 매드 해터스’(Mona Lisas and Mad Hatters), ‘필라델피아 프리덤’(Philadelphia Freedom) 등 그의 대표곡들을 연달아 불렀다.
마릴린 먼로를 위해 발표한 곡으로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사망 당시 추모곡으로 재 탄생 된 ‘캔들 인 더 윈드’(Candle in the Wind)’와 그의 히트곡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Goodbye Yellow Brick Road), 자신의 별명이기도 하고 이번 투어의 타이틀이기도 한 ‘로켓 맨’(Rocket Man)이 연이어졌다.
공연의 백미는 역시 11분이 넘는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의 대곡 ‘퓨너럴 포 어 프렌드’(Funeral for a Friend). 노장 밴드의 불꽃 튀는 연주와 조명 연출은 관객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공연 후반부에는 ‘돈 렛 더 선 고 다운 온 미’(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같은 히트곡과 ‘크로코다일 록’(Crocodile Rock) ‘세터데이 나이트 올라잇 포 파이팅’(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같은 신나는 곡들로 채워졌고 앙코르 무대에선 존 레논이 경탄 했다는 ‘유어 송’(Your Song)과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가 연주됐다.
음향상태 역시 최상이었다. 두시간 넘게 엘튼 존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 뿐 아니라 기타, 드럼, 베이스, 신디사이저, 코러스 할 것 없이 악기 하나하나 소리가 안정적이고 울려 퍼졌고 심지어 트라이앵글 작은 소리 하나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또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엘튼 존과 밴드들의 표정 뿐 아니라 피아노 건반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엘튼 존의 손가락을 계속적으로 비쳐 관객들을 흥분시켰다. 50여명의 현지 스태프와 100톤에 달하는 장비들을 전용기에 실고 다니는 이유가 분명해 보였다.
내내 피아노 앞에 앉아 공연을 하는 까닭에 무대 매너라고 할 특별한 액션도 장황한 멘트도 없었지만 두 세곡 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관객들의 환호를 느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공연이 막바지에 치달을 즈음 열광적인 관객들의 반응에 평소 보기 힘든 환한 미소를 보이며 “끝내 주는 밤이다”며 회답하기도 했다. 그랜드 피아노 위에 폴짝 뛰어올라 앉기 까지 했다.
실제로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던지 엘튼 존은 앙코르 외침을 기다리지도 않고 무대에 나타나 관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사인 요청까지 응했다.
바쁜 투어 일정 탓에 공연 당일 북경에서 헬기로 한국에 입국한 엘튼 존은 공연 직후 전용기를 타고 홍콩으로 향했다. 공연 관계자에 따르면 공연에 대한 특별한 얘기 없이 환한 미소 한번 지어주고 떠났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 좋았던 거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