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남자 정훈(이제훈)은 짝사랑하는 여대생의 집을 병적으로 매일 도청하고 녹화한다. 여대생의 전 연인 현수(김태훈)는 아직도 여자를 사랑한다며 전화하고 집에 찾아온다.
어느 날 집에서 수택과 성관계를 맺은 진아는 살해되고 만다. 현수가 그녀를 찾아와 살해한 것. 이를 목격한 정훈은 현수에 분노를 느낀다.
진아의 집을 다시 찾아가 자신도 자살하려던 현수는 욕실에서 목을 맸으나 실패, 그곳에 설치된 도청장치를 발견하고 진아가 스토킹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민다. 수택과 명록도 각기 다른 이유로 분노가 인다.
영화 ‘분노의 윤리학’은 미모의 여대생의 사망이라는 사건을 두고, 이 여성을 둘러싼 네 명의 남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중심이다.
살인자를 찾는 게 초점은 아니다. 초반부터 여대생의 전 연인인 현수(김태훈)가 범인임이 드러난다. 중요한 건 이 여자의 사망으로 네 명의 남자들이 왜 분노하고, 또 이들의 연쇄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다.
영화는 흔히 말하는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노(怒)'의 감정에 집중한다. 그 감정을 풀어가는 방식은 새롭고, 특이하다. 머리를 써 살인자를 찾으려 하기보다 이들이 분노를 가슴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하려는 시도다.
네 명의 남자를 악한으로 규정하고 나쁜 놈(이제훈), 잔인한 놈(조진웅), 지질한 놈(김태훈), 비겁한 놈(곽도원)으로 그린 것도 꽤나 똑똑한 설정이다. 평범한 얼굴 밑에 이글거리던 서로의 분노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상황이 관심을 끌게 하긴 한다. 여기에 이들보다 더 나쁠 수 있는, 교수의 부인 선화(문소리)까지 얽히며 이야기도 풍부해졌다.
하지만 초반 신선함과 특이함은 중반 이후로 힘이 약해진다. 네 명을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한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는 식이 이어지는데 지루하다. 이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여대생의 사망이라는 건 확실한데 이후 이야기는 느슨하게 느껴진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며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하며 싸우는 남자들도 우스꽝스럽다. 설득력 있게 들리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답답하게 와 닿는다. 부조리한 파국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블랙코미디 장르로 접근하려했지만, 썩 흥미롭게 다가오진 않는다. 110분. 청소년 관람불가. 21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