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욱은 ‘돈의 화신’에서 비리검사 이차돈(강지환)의 곁을 지킨 양구식 계장(이하 양계장) 역을 맡았다. 주인공 이차돈과 짝을 이룬 양계장이 극 속에 종종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양형욱의 양계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비결은 특별하지 않다. 양형욱이 양계장이고, 양계장이 양형욱이었던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이브를 잘 해야 진짜 가수이듯, 연기도 마찬가지에요. 라이브로 할 줄 알아야 진짜 연기자죠. 자기 것으로 해야지, 흉내 내서는 안 됩니다. 강지환이 이차돈이어야 하고, 양형욱도 양구식이어야지. ‘누가 연기하는 느낌’만으로는 안 돼요.”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MBC 특채 탤런트로 방송가에 문을 두드렸지만 이내 연극의 매력에 빠져 십 수 년간 무대 위에서 살았다. ‘돈의 화신’에서 악랄한 부장검사 권재규 역을 열연한 이기영을 비롯해, 허준호, 최민수 등과 함께 80년대 후반부터 연극계 내로라하는 청춘스타로 활약했다.
100여 편의 무대 경험은 그를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돈의 화신’ 속 이차돈-양구식 콤비는 극 중반부까지 코믹한 장면을 다수 연출했는데, 이는 두 사람의 내공과 감독의 믿음이 합쳐진 시너지의 결과다.
정신병동 잠입 에피소드는 ‘돈의 화신’ 시청자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드라마가 종영한 지 불과 이틀 밖에 안 됐는데,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양계장이 그립다.
“내 매력은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 싶은 게 적정선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원치 않아요. 덜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웃음),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만 나오는 게 좋아요. 왜냐, 나보다 잘난 얼굴도 많으니까. 그보다 내가 앞서가서 나오면 싫을 것 같아요. 작은 역할이란 없어요. 단지 조금 나올 뿐이지, 모든 역할이 중요하죠.”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정신병동 씬이나,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연기로 꼽은 배변 곤란(?) 씬은 모두 강도를 달리 한 몇 가지 버전의 연기 가운데 탄생한 명장면이다. 양형욱은 “고민을 정말 많이 한 장면인데 연출이 잘 잡아줬다”며 유인식 PD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마지막회 엔딩 속 이차돈과 복재인(황정음)의 웨딩마치 순간까지도 발군의 활약을 한 양계장에게 시청자는 물론 작가, 스태프들도 엄지를 치켜세운다. ‘명품조연’이라는 호평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명품조연이요? 고맙고 영광스럽죠.” 양형욱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명품이라는 칭호가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그런 호칭을 내가 듣는다는 건 정말 영광이죠. 다음 작품에서도 또 명품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부담이 생길 정도로 위대한 단어라 생각합니다.”
명품배우 양형욱이 꿈꾸는 캐릭터는 부담 없고 편안한, 2% 부족한 인물이다. “남들보다 좀 모자란 역할이 좋아요. 보통 나보다 좀 덜떨어진 인물에게 정감이 가잖아요. 코미디 연기가 웃음을 줄 수 있는 건, 나보다 모자라 보이기 때문이죠.”
“같이 작품 하면 편하고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좋아요. 작품이 끝나도 사람들이 찾는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 시청자들로부터 ‘괜찮은 배우’라는 평을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동료들이 다시 함께 하고 싶어하는 배우. 얼마나 좋아요(웃음).”
인터뷰 내내 그는 ‘일’이라는 표현 대신 ‘작품’이라 했다. “누군가는 드라마(촬영)를 ‘일’이라 표현하더군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작품’이죠. 일이라 하면 그저 돈벌이 수단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작품은 결코 그럴 수 없거든요. 피곤하고 지쳐도, 우리는 일이 아닌 ‘작품’을 하는 사람입니다.”
‘돈의 화신’은 초반부터 상상 초월 ‘시월드’로 공세를 펼친 MBC ‘백년의 유산’에 밀려 동시간대 2위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백년의 유산’이 갖지 못한 무(無)안티 수작(秀作)으로 꽤 오랫동안 기억될 전망이다.
“‘돈의 화신’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팀워크가 좋았어요. 촬영 내내 재미있고 즐거웠죠. 다음 회차 대본이 나 역시 궁금했으니까요. 함께 해준 감독, 작가, 배우 외 모든 스태프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SBS]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