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재 적은 관수로 상영 중인 한 한국영화 관계자가 “한국영화 관객이 호구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고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 관계자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내한해 영화를 홍보하는 것, 좋다. 한국 팬들에 좋은 인상도 심어주고,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 세계 최초 개봉이라는 말도 갖다 붙이니까 대단한 것 같다”라면서도 ‘호구’라는 말을 덧붙였다.
호구(虎口).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국 관객이 외국 영화의 포로가 됐다”는 정도로 이해됐다. 솔직히 상영관을 많이 못 가진 자의 투정 혹은 푸념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가 강세였고, 올해도 꽤 괜찮은 작품들이 좋은 성적을 내놓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호구 발언은 외국영화가 잘 되니 배 아파한 국내 영화 관계자의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스크린 독과점과도 맞물리는 이야기다. 절대 개선되지 않는 해묵은 과제다. 전체 2400여 개 상영관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와 다른 영화가 대결하기는 쉽지 않다.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외국영화 ‘아이언맨3’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한국영화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비슷한 논란을 이어갔고,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최근 들어 2~3달에 한 번 꼴로 해외스타들이 내한해 “한국영화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이 ‘미국 내 한국영화 위상이 높아지고 대단하다. 영향력이 크다’고 착각하거나 안일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희소성의 원칙(?)이라고 해야 할까, 매력적이긴 하다. 내한 해외 스타들이 많아진다는 말도 한국 시장을 고려한다는 말일 텐데 요즘 들어 ‘돈이 되는 시장’이라는 말로 더 크게 들린다. 안타깝게만 들을 얘기는 아니지만 아쉬운 이유는 한국영화 시장에서의 특수성으로 인해 한 영화를 향한 쏠림 현상이라는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한국영화 시장은 세계 영화 시장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해외 스타들은 일본을 거쳐 한국을 마지못해 오거나, 아예 뛰어 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꽤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한국 시장에 인사하려 한다. 출연 배우들이 스케줄이 안 되면 감독이라도 오고 싶어하는 눈치다. 돈을 중시하는 지극히 상업적인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에게 속된 말로 한국영화 시장이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됐다”는 말로 더 이해되는 이유다.
내한 해외 스타들은 A급 배우들 방한 시 1억 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된다. 레드카펫이나 부대행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비용들은 외국 스튜디오에서 충당하기도 하나, 국내 투자배급사가 맡기도 한다. 관객 수익금은 계약 비율에 따라 달리 계산되지만 엄청난 돈이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 한국에서 벌어들인 이 수익이 다시 한국에 투입되는 건 한국영화들의 이익금이 재투자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외국영화를 보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볼만하고 좋은 한국영화도 많은데 굳이 흥행을 담보로 외화에게만 상영관을 독점적으로 열어주는 게 비정상적이라 아쉽다는 말이다. 지난 한 달은 ‘아이언맨3’ 한 편과 다른 나머지 모든 영화들이 상영관 수 경쟁을 한 꼴이었다. 한국 관객 호구 발언과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푸념이 달리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영화 사랑을 외치며 이상하고 조악한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더 한국 관객을 호구로 보는 생각이다. 질 좋은 영화, 관객의 마음을 이끄는 영화가 만들어지면 우려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긴 하다. “관객들이 찾기 때문에 개봉관 조정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멀티플렉스 측 말대로 관객이 많이 요구하면 이익을 내기 위해서라도 개봉관을 늘릴 것이 분명하다.
다행인지 ‘아이언맨3’의 기세가 한풀 꺾여 다른 영화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 ‘고령화 가족’과 ‘미나문방구’, ‘전국노래자랑’ 등도 미약하나마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으로 내한한 한국계 배우 성강은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라며 자신의 방한이 한국 시장의 맞춤형 행사로 참여하게 됐음을 넌지시 밝혔다. 한국인이니 한국 방한 행사에 함께하자 말이다. 할리우드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는 할리우드 내 한국영화의 입지나 위상이 커진 것을 실감하느냐는 질문에는 “그것보다는 한국 사람이 고집이 세기 때문”이라며 할리우드에서 어려운 생활에 끈기와 인내가 통하고 있는 점을 짚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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