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근(이희준)은 매일 이 생각을 붙잡고 산다. ‘그때 차경(한예리)을 혼자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때 가지 말라고 붙잡았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매일 과거를 뒤집는다. 혁근은 스스로 죄인이 되길 자처한다. 그녀가 죽은 건 그날 차경을 말리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었으니까.
혁근과 차경은 눈부신 커플이었다. 사랑 하나론 세기의 어떤 커플도 대적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둘도 없는 배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차경이 살아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 완벽함을 망친 건 ‘나’라고 혁근은 생각한다.
차경과 혁근 곁엔 기옥(이영진)이 있다. 기옥은 혁근을 좋아했지만 그만큼 두 사람의 사랑을 더 아꼈다. 가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행복했기에 욕심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차경이 죽어버렸다.
불편한 진실이다. 공교롭게도 차경은 기옥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기옥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전거에 대해 왜 미처 말해주지 못한 건지 후회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고 만다. 사랑의 에너지는 때때로 무의식의 욕망을 위해 사용될 수 있지 않냐는 불안한 가능성에 휩싸이고 만 것이다. ‘혹시 내가 차경이 죽기를 원한 건 아닌가’라는 자기 망상에 빠져 죄의식에 허우적거린다.
기옥이 기다렸다는 듯이 혁근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건 바로 그 이유에서다. ‘나 때문에 차경이 죽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짓밟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적어도 내 죄보단 혁근의 죄가 명명백백히 더 크게 비치고 말테니까.
혁근이 기옥이 범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다. 차경이 나 때문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책임을 기옥에게 전가하고 싶다. 알고보니 기옥은 나를 좋아했고, 그래서 일부러 차경에서 고장난 자전거를 타게 한 것이라는 논리로 죄의식에서 자유해지려고 한다. 그리고 기옥을 벌한다. 날 사랑하는 여자에게 가장 잔인하게 상처주는 것으로 말이다.
‘환상 속의 그대’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그린다. 무엇이 ‘최선책’인지 미처 고려해 볼 여유는 없다. 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지금의 괴로움을 타계할 유일한 방법이다.
인생은 괴롭고 외롭다. 인간이란 자기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픈 존재.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의 공생은 불가능한 것일까. ‘동상이몽’과 ‘동병상련’의 간극을 메우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영화의 끝에 그 답이 있다. 현재 상영중. 110분. 청소년관람불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염은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