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부활 보컬로 데뷔해 ‘보컬의 신’이라는 타이틀 속에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를 풍미한 이승철은 여전히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인기 가수다. 올해까지 5년 연속 Mnet 대국민 오디션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10대 팬들조차 ‘모르면 바보’인 그야말로 진짜 대중가수로 거듭났다.
이정도면 적당히 그 이름값으로만 해도 중간은 갈텐데, 놀랍게도 칼을 갈고 돌아온 분위기다. 4년 만에 내놓는 정규 11집 ‘마이 러브(MY LOVE)’를 들고 말이다.
‘돌아왔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방송 그리고 콘서트를 통해 대중과 가까이서 호흡해 온 근 4~5년이지만 심사위원석에서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선보이던 것과 달리, 이번엔 새 음악을 대중에게 선물함과 동시에 철저히 평가 받을 준비가 된 모습이다.
12일 서울 강남 모처에서 만난 이승철의 얼굴엔 어느 때보다 설렘이 가득했다. 앨범 수록곡을 들려주기에 앞서 “숙제 검사를 받는 느낌”이라며 쑥스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OST 아닌 정규 음반 발매는 10집 이후 무려 4년 만이다.
타이틀곡 ‘마이 러브’와 선 공개곡 ‘사랑하고 싶은 날’을 비롯해 총 10곡이 담긴 이번 앨범은 트렌디한 모던팝 계열의 곡들로 채워졌다. “심사위원을 하다 보니 하도 쳐다보는 눈이 많아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곡도 좋아야 되고, 후배들에게 음악적 기량과 보컬의 능력도 보여줘야 될 것 같고, 대중성도 있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죠.”
프로듀싱을 맡은 작곡가 전해성은 “트렌디함을 반영함과 동시에 현 시점에서의 이승철이라는 가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를 고민했다”고 부연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제작하다 보니 정작 이번에는 ‘이승철표 음악’으로 일컬어지는 정통 락발라드는 쏙 빠졌다. 나머지는 파트2로 가을께 발표할 계획이다.
보컬 ‘장인’으로서의 음악적 고집보다는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를 먼저 생각한 결과, 타이틀곡은 ‘마이 러브’로 낙점됐다. “음악을 하다 보면, 오랜 시간을 갖고 하는 게 중요하지만 역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히트곡이 되는구나 하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느꼈습니다.” 14일 선 공개되는 ‘사랑하고 싶은 날’ 역시 아내로부터 의심을 살 정도로 느낌 있게 불러 완성됐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보컬 창법이다. 폭발력, 호소력이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할 정도로 힘을 뺐고, 힘을 뺀 만큼 담백해졌다. 대신 발라드지만 리드미컬하다. 이러한 변화 역시 최신 발라드의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다.
“중요한 건 컬러였어요. 진부하지 않은 음악들을 만들어 발표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죠. 제가 ‘슈스케’ 친구들에게는 본인의 창법을 계발하라고 하지만, 사실 오래한 가수들은 자신의 창법을 고수하는 게 위험한 일입니다. 창법이란 게 자기 발목을 잡는 덫일 수 있거든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작곡가의 의견이 많이 반영돼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새 옷을 입을 수 있고 나도 모르게 달라져 있는 것이죠. 이번에도 새 옷을 입었지만, 이번에 특별히 새롭게 시도했다기보다는 늘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 중 하나라는 겁니다.”
녹음을 모두 마치고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을 때 즈음 정규 19집 ‘헬로’로 컴백한 선배 조용필의 활약은 이승철의 머리를 번쩍 치는 계기가 됐다. “용필형님 티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형님 같으면 그냥 던져 놓으셔도 될 텐데, 그 능력과 아이디어가 존경스러웠죠. 저는 사실 어느 정도 해왔던 방향으로 마케팅을 하면 되겠다 생각했었는데 형님의 행보를 보고 활동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역시 용필형님은 우리에게 이정표를 주시는, 등대 같은 분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이승철이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은 없을까. “부담이라는 건, 그냥 주저앉으면 부담이 되는 것이고요,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이라고 생각해야죠. 채찍이라 생각하면 원동력이 되더군요.”
음원 공개 성적, 특히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 후배들과의 순위 경쟁을 앞둔 속내를 묻자 “씨스타가 가고 나며 또 다른 팀이 온다”고 너스레 떨며 “그보다는 타이틀곡이 잘 될까가 제일 부담된다” 했다. 그의 경쟁자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18일에는 ‘어서와’라는 타이틀의 오픈 쇼케이스를 개최한다. 현장에서는 이승철과 뗄 수 없는 인연, 박명수의 진행으로 ‘어서왕’ 콘테스트도 열릴 예정이다. ‘어서왕’ 등으로 대중에 희화화되는 28년차 가수라니. 한편으론 ‘모양 빠지는’ 아이러니 아닐까.
“저는 참, 천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건 정말 가수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거든요. ‘어서왕’과 같은 짤방(!)도, 저는 제 이미지를 편안하게 부각시켜준 것이라 너무 좋아요. ‘어서와’라는 콘서트 이름도 제가 지었는걸요? 그런 식으로 편안하게 찾아와주시는 게 너무 좋습니다.”
그의 만면에 어느 때보다 발그레하게 미소가 번졌다. 내일 모레면 지천명(知天命)인 이 40대 후반의 중견 가수가 말이다. 어쩌면 시작점에 다시 선 이 28년차 가수는, 올해도 어김없이 무대에서 팬들을 만난다. 29일 창원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개최한다.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마이 러브’를 들고 말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