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꿈을 생각하기는 어려운 시기. 꿈은 대학에 가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이다. 특히 성적이 상위권에 있는 학생이었다면 친구가 친구로 안 보일 수도 있는, 무척이나 잔인한 순간을 겪었을 게 틀림없다. 영화 ‘명왕성’은 이러한 극한의 경쟁에 내몰린 한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이야기를 담았다.
1등을 매번 놓치지 않았던 학생 유진(성준)이 학교 뒷산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용의자는 같은 반 학생 김준(이다윗). 현장에 떨어진 준의 휴대폰과 친구들의 증언은 그를 범인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준.
영화는 천문학자를 꿈꾸는 준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해 사건을 설명해 나간다. 범인을 찾는 스릴러적인 요소가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미라는 요소로만 바라보기에는 극에서 표현된 냉혹한 현실이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한다.
강북의 고등학교에서 나름 상위권이었는데 새로운 학교에서 준의 성적은 거의 꼴찌. 상위권 학생들의 모임에 끼고 싶어하는 그는 영혼이라도 팔 것처럼 유진의 스터디 그룹에 잘 보이려 노력한다. 그들의 오답 노트를 공유해 성적으로 올리고 싶기 때문. 유진과 다른 친구들은 비윤리적인 입단 테스트를 시키고, 준은 따라가고 만다.
준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갈 친구들을 원했던 것 같은데 아이들의 경쟁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등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친구도 배신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까지 만든다. 이들의 만행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을 만큼 충격적이다. 스터디 멤버들의 과거가 드러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10여 년 동안 교단에 선 신수원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믿기 어렵겠지만 충분히 가능할 수는 있다. 고3의 슬픈 현실이 가슴을 후벼 파는 이야기다. 공포영화는 아닌데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섭기도 하다.
한때 태양계의 행성이었던 명왕성은 2006년 퇴출당했다.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고 행성이라고 하기에 너무 작은 크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재능 여부에 상관없이 성적이 좋지 않으면 버려지는 한국의 교육제도를 명왕성에 빗댔다. 한국 사회의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은 그의 작품을 눈 감고 외면한다면 죄를 짓는 기분이다.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지나친 폭력 묘사 등을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이의신청 끝에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아냈다. 107분. 11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