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인터뷰를 하면서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 특별한 인터뷰의 주인공은 바로 AOA 블랙. 지난해 7월 데뷔한 그룹 AOA의 밴드 유닛으로, 9개월 만에 5인조로 돌아왔다.
AOA 블랙은 리더이자 기타와 랩을 맡고 있는 지민, 키보드와 보컬을 맡고 있는 유나, 드럼 담당 유경, 리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초아, 랩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민아로 구성됐다. 8인조일 때와 사뭇 다른, 멤버별 개성이 한층 돋보이는 ‘정예부대’다운 느낌이다.
이들은 인터뷰 불과 하루 전날인 지난 23일, 일본 도쿄에서 쇼케이스를 선보이고 돌아왔다. 다소 피곤할 법 한데, 여느 신인 그룹과 비교해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활달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에서 똑같은 포맷으로 쇼케이스를 한 지 1년 만에 일본에서 하게 돼 기뻐요. 스스로도 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현지 관계자 분들도 다들 미소를 지으며 지켜봐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지민)
이들의 쇼케이스가 특별했던 건, 댄스 위주의 타 걸그룹과 달리 국내 보기 드문 ‘밴드형’ 걸그룹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컨셉만 밴드형’이 아닌, 실제로 악기 연주가 능숙한 이들로 구성된만큼 차별화된 발전 가능성이 명확하다.
밴드의 합을 최우선으로 하는 팀이지만 ‘대한민국 걸그룹’이 지닌 숙명과도 같이 댄스 또한 포기할 수 없다. 두 마리 토끼를 좇기란 쉽지 않을텐데, 이럴수가. AOA 블랙은 이미 뮤지컬, 드라마를 통해 연기 영역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으며 호시탐탐 예능 출연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준비된 토끼 사냥꾼들이었다.
‘만능’이어야 한다는 점이 이들에게는 이러한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기보다는 또 다른 즐거움인 듯 싶다. “요즘 아이돌들은 워낙 다들 잘 하잖아요. 저희 역시 연습생일 때부터 연기, 외국어 등도 연습해왔고 밴드 준비도 해왔기 때문에 크게 힘든 점은 없어요. 오히려 밴드와 댄스를 둘 다 함으로써 도움이 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댄스를 통해 보여드릴 수 있고, 밴드를 통해 음악적인 부분을 들려드릴 수 있으니까요.”(지민)
AOA 블랙은 기존 AOA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로 대중 앞에 나설 예정이다. “블랙 팀은 아무래도 팀 내 언니들의 팀이거든요(웃음). 동생들도 화이트 유닛을 준비하고 있지만 저희도 준비를 많이 했어요. 여러 가지 색을 다 조합하면 블랙(검정)이잖아요. 다양한 색을 하나씩 꺼내 보일 계획입니다.”(초아)
그렇다고 블랙이 주는 이미지처럼 다크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시원하고 밝은 느낌이다. 타이틀곡 ‘모야(MOYA)’는 레게리듬이 가미된 동양적인 멜로디의 곡으로, 점점 변해가는 남자친구에게 투정을 부리는 여자의 심정을 경쾌하게 그렸다.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 표준어인 ‘뭐야’ 대신 요즘 청소년들이 쉽게 사용하는 ‘모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지민은 “계절도 여름인만큼 발랄하고 시원하게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후렴구를 들으면 한 번 들어도 따라할 수 있게 쉬운 곡”이라고 설명했다.
내친김에 각각의 멤버들을 색으로 표현해보자 하니 한껏 들뜬 분위기의 AOA 블랙은 리더 지민의 지목에 멤버들 모두 웃음으로 긍정의 화답을 한다.
“초아 언니는 금색이요. 머리도 금발이고 또 우리 팀 메인 보컬이기도 하고요. 무대에서 빛나기 때문에 금색이 잘 어울려요. 민아는 분홍색. 소녀 감성이거든요. 수줍음도 많이 타고, 귀엽고 발그레하고. 예능에서도 잘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유경이는 건강한 느낌의 드러머에 생동감 있는 친구니까 초록색. 유나는 주황색이요. 뭔가 섹시한 느낌이 있고, 너무 청순하지만도 그렇다고 섹시하지만도 않은 오묘한 느낌이 있죠. 그리고 저는 빨간색이요. 팀의 카리스마를 맡고 있는 리더이기 때문에 강렬한 빨간색으로 하겠습니다”
다양한 색을 보여주기 위한 개별 활동도 서서히 병행하고 있다. 현재 초아는 뮤지컬 ‘하이스쿨 뮤지컬’에 출연 중이고, 민아는 드라마 ‘사춘기 메들리’에 출연 중이다. 멤버들간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있지 않느냐 묻자 의젓하고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은 AOA가 인지도가 많지 않은 편이에요. 때문에 경쟁심이라기보다는, 누군가 한 명은 잘 돼서 우리 팀을 알리는 게 목적이죠. 그리고 어려서부터 같이 해왔기 때문에 다들 잘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초아)
스스로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AOA 블랙. 이들은 AOA로 살아온 지난 1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냉철한 자기고백이 담담하게 이어졌다.
“사실 처음 나왔을 땐 나름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우리 스스로 실망감이 컸어요. FT아일랜드, 씨엔블루 등 선배님들의 경우 워낙 나오자마자 잘 됐고, 주니엘도 음원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우리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해주셨는데, 기대만큼은 안 됐죠.”
“저희가 데뷔했을 때가 신인이 60~70팀 나올 때였거든요. 방송 한 번 나가기도 쉽지 않았죠. 그땐 조급했지만, 9개월 동안 공백기를 거치며 많은 생각을 했는데, 처음부터 잘 됐으면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점점 잘 되면 되니까. 조급함을 버리고 자기 개발에 더 신경 쓰게 됐어요.”(지민)
“멤버들이 8명인데 3분이라는 시간 동안 다 보여드리긴 너무 벅차요. 아직 30%도 못 보여드린 것 같아요. 그만큼 자신 있고, 앞으로 더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음악적 욕심도 높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팀이라는 것을요.”(초아)
20대 초반. 어린 나이지만 이들이 속한 사회(가요계)를 통해 쓴 맛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결코 잃은 것은 없는 시간이었다. 다만 하나만 보고 달려 온 꿈의 소중함 그리고 진정한 음악에 대한 큰 꿈을 얻게 됐다.
“이전에는 인기를 얻고 싶다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잘 해야겠다는, 그런 단순한 목적에 의한 활동이었다면 어느 정도 내려놓고 보니, 더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조금은 느리지만 천천히, 진정성 있게 승부해 대중의 마음에 남는 음악으로 다가가고 싶어요.”(초아)
풋풋한 청춘이지만 더 높은 꿈을 위해, 아직은 연애 생각은 접어두었단다. 평균 3년 가량 연습생 시절을 거쳐 이제 갓 프로의 세계에 데뷔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말로는 연애하고 싶다 이야기 하지만 사실 아직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준비했던 것을 무대 한 번으로, 방송 한 번으로 보여드려야 한다는 데 고민이 커요. 그렇게 준비해서 했는데도 모니터 해보면 아쉽고 그러니까요. 드라마 보면서 연애, 데이트 감정을 간접경험 한다 해도, 사실은 배우의 눈으로 보고 있기도 하고요.”(지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가수 그리고 연예인의 길.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엔 이르지만 단 한 번도 후회는 없다는 AOA 블랙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지내기 때문에 너무 행복해요. 다들 9개월 동안 무대에 서고 싶다는 갈증이 너무 많아서 활동을 앞둔 지금 너무 기쁘고요. 많이 성숙해지고 완성된 모습을 보여드릴테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유나)
“저 역시 하고 싶어했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다만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 단순히 아이돌 가수로 평가받기보다는 진짜 좋은 음악을 하는 AOA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초아)
인터뷰를 마친 뒤 스케줄을 묻자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연습실에 돌아가서 합주를 해야 한다”는 이들은 연습실 풍경 또한 여타 걸그룹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가 사운드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동그랗게 앉아 서로 악기 연주를 들으면서 합을 맞추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모션이나 보여지는 모습보다도 듣는 것에 집중하고 노력을 많이 하죠.”(민아)
절치부심이 통한 걸까. AOA 블랙의 ‘모야(MOYA)’는 지난 26일 발매 직후 소리바다, 벅스, 몽키3 등 주요 음원 사이트 실시간 차트 1위에 오르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올 여름, 무수한 아이돌의 총성 없는 전쟁 속에서도 AOA 블랙의 활약을 유독 기대해보게 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FNC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