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다수 힙합 뮤지션들의 릴레이 ‘디스’로 힙합계는 물론, 가요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점점 ‘디스戰(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힙합씬을 넘어 연예가에서 화제가 된 것은 이날 오전 이센스가 트위터를 통해 기습적으로 공개한 곡 ‘E-Sens- You Can't Control Me’으로 시작됐다.
해당 곡에서 이센스는 최근까지 같은 소속사 아메바컬쳐에 몸담고 있던 선배 다이나믹듀오 개코와 회사를 언급하며 강도 높은 공격을 퍼부었다.
2008년부터 쌈디와 함께 슈프림팀으로 아메바컬쳐에 소속됐으나 지난 7월 계약 해지된 이센스는 해당 곡을 통해 “이거 듣고나면 대답해. 개코”라며 전 소속사를 향해 돌직구를 던지기도 했다.
또 “막무가내로 덤비는 멍청이와 비겁해진 메이져 랩퍼가 씬의 4분의 3을 채웠네. 한국힙합은 반죽음”이라는 상징적인 가사를 통해 최근의 힙합 씬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이어갔다.
이센스 발 ‘디스’의 대상이 된 아메바컬쳐가 “안타깝다” 외에 이렇다 할 대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랩퍼 스윙스 또한 쌈디와 아메바컬쳐를 비난하는 랩으로 ‘디스’에 불을 붙였다.
스윙스는 이날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황정민 Part. 2’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게재했다. 해당 영상에는 스윙스가 직접 녹음한 랩이 담겨 있으며, 곡 초반부터 욕설을 섞어가며 쌈디(본명 정기석)를 디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어글리 덕(본명 선주경) 등 여러 힙합 아티스트를 가사에 담아 비난을 쏟아냈다.
다소 격한 분위기의 인신공격성 발언도 포함됐지만 다수 네티즌들은 실제 스윙스 랩의 진실여부에, 그리고 힙합 마니아들은 그의 라임에 보다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와 별개로 다수의 힙합 뮤지션들은 이번 디스전에 대해 켄드릭 라마를 언급하고 있다. 켄드릭 라마는 올해 미국 힙합계를 뜨겁게 달군 신예로 빅 션의 ‘컨트롤’에서 제이콜, 빅 크릿, 에이셉 라키, 빅션 등 힙합 거물들을 신랄하게 디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켄드릭 라마의 ‘컨트롤’ 이후 다수의 힙합 뮤지션들이 SNS를 통해 맞대응하는 곡을 발표, 릴레이 디스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시작된 것. 실제로 다수 뮤지션들은 이번 이센스, 스윙스의 디스전을 두고 “켄드릭 라마가 지른 불”이라고 표하고 있다.
한국 힙합계의 거장 듀스의 이현도는 자신의 트위터에 “켄드릭 라마가 지른 불이 한국까지 번졌네”라는 글을 게재했다. 박재범 또한 “KENDRICK LAMAR 덕분에 한국 힙합까지 불타올렸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적으며 흥미로워했다.
또 랩퍼 제리케이는 트위터에 “켄드릭 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와서 봤으면 좋겠어. 이 위대한 MC님”이라며 “그 어느 때와도 다른 양상이다 켄드릭이 놔준 다리 덕에 다들 서슴없이 강을 건너고 있으니. 그동안 다들 어떻게 참고 살았어 너도나도 힙합이고 real이고 거짓말 안한다면서”라고 적었다.
실제로 이센스 디스곡이 나오기 전, 이미 국내 힙합계에선 켄드릭 라마로 촉발된 디스전이 시작됐었다. 스윙스가 ‘킹 스윙스 파트 원’을 발표하자 테이크원은 ‘Recontrol’, 어글리덕은 ‘ctrl+alt+del 2’, 야수는 ‘선배님, 안녕하세요’ 등 맞디스곡을 잇따라 내놨다.
이센스는 디스곡 발표 전 힙합전문사이트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켄드릭 라마를 언급하며 본인 역시 디스곡을 발표할 의향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이후 불과 며칠 만에 ‘유 캔트 컨트롤 미’를 발표하면서 힙합씬 안에 한정돼 있던 이번 디스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센스는 “지금 가요판에 랩을 사람들은 구분이 안 된다. 그런 시각 자체를 없애려면 싸우듯 하는 랩이 계속 나와야 한다. 진짜 랩 게임이 존재한다면, 모든 래퍼들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게임 하듯이 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켄드릭 라마가 촉발한 랩퍼들간 디스 게임이든 혹은 디스곡 가사 안에 거론된 특정인들 사이 개인적인 갈등이든, 최근 한국 힙합계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번 디스전이 신선한 환기의 계기임은 분명하다.
다만 이와 별개로 이센스와 스윙스의 디스 대상이 노골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점 그리고 소속사와 계약해지되는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팬들에게조차 베일에 가려졌던 점 등을 비춰볼 때 단순 게임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단, 여전히 게임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에 대한 속단은 금물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