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두정아 기자] 늘 똘망똘망한 어린아이 같다. 하지만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되니, 더 이상 동안(童顔)이라는 칭찬을 하기 망설여진다. 다름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여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30년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화려한 이력과,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동안 외모를 지녔지만 문득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고정된 이미지는 배우로서의 한계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배우 이재은은 무대에서만큼은 더 자유롭고 더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 연극 ‘선녀씨 이야기’에 출연하며 애절한 모성애를 펼치고 있는 이재은을 만났다.
“데뷔한 지 30년이 됐는데, 모성애를 표현한 작품은 처음이에요. 아직 출산을 안 해봐서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연기하다보니 부모로서가 아닌 자식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하는.”
전작인 모노드라마 ‘첼로의 여자’에서 여자의 외로움을 얘기하며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면 이번 ‘선녀씨 이야기’에서는 아낌없이 주는 모성애를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선녀씨 이야기’는 집을 나간 지 15년 후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찾아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대 가족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재은은 극중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바친 선녀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대본을 받아 읽었는데 혼자 막 울다 웃다 하게 되더라고요. 옆에서 신랑이 ‘도대체 뭐를 읽느냐’고 궁금해 했을 정도였어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읽자마자 바로 출연하겠다고 전화를 했죠. 남편도 꼭 출연하라고 옆에서 강력 추천해줬지요.”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 임호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임호의 부친은 이미 알려진대로 1983년 대종상 영화제 각본상과 93년 백상예술대상 TV 극본상 등을 수상한 원로 작가 임충 이다. 호소력이 짙은 시대상을 반영한 ‘사모곡’ ‘하늘아 하늘아’ ‘몽실언니’ ‘장희빈’ 등을 집필한 바 있다. 이재은은 드라마 ‘하늘아 하늘아’를 통해 임충 작가와 호흡을 맞춘 경력이 있다.
“서로 오랜 시간 연기를 해왔는데, 작품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에요. 오히려 임충 선생님과는 어린 시절 작품을 같이 했던 인연이 있죠. 세대를 거쳐 만나니 너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경력이 오래 되긴 됐구나 싶기도 하고.”
무대에는 자주 오르지만 TV 출연이 드물어 갈수록 대중과 멀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는 “안방극장을 떠나려는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며 “스태프의 한 세대가 지나서 나와 친했던 PD들은 지금 CP, 국장이 돼 있다”며 웃었다.
“사실 그동안의 경력을 보면 연기에 대해서는 믿고 맡길 수 있겠죠. 그런데 동안이고 아역의 이미지가 강해서 애매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애 엄마 역을 맡기자니 너무 어리게 느껴지고, 미스로 출연하자니 나이는 또 있고. 아역출신이 극복해야 할 과제겠죠. 지금이 과도기라고 생각돼요.”
“아직도 끊임없이 배우는 것 같다”는 그는 “경력이 길건 짧건 현재 자신이 맡은 배역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힘들 때도 분명 있지만, 늘 진정성을 가지고 임한다면 배우로서의 매너리즘이나 슬럼프도 넘길 수 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선녀씨 이야기’는 지난해 전국연극제에서 대상 및 희곡상과 연출상 등 5관왕을 달성한 작품이다. 어머니를 2인 1역으로 설정하고,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구성으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오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에서 공연된다.
두정아 기자 dudu0811@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