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사극? 당분간 절대 안 할 거예요. 퓨전사극도 안 할 겁니다.”
절래절래 고개를 흔드는 그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장 2년이다. 사극이라는 시대배경 속에서 김주혁이 살아가야 했던 시간들 말이다.
지난 2012년 드라마 ‘무신’에서 고려정권을 탈취하고 정상에 오른 김준부터 ‘구암허준’의 타이틀롤 허준까지.
그렇게 하염없이 고려와 조선시대에서 살아왔던 그가 오랜만에 한복을 벗고 2013년을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 김주혁으로 돌아왔다.
16세기 말 허준에서 21세기 김주혁으로 복귀한 김주혁은 그간의 촬영의 고단함을 알리듯 살이 쏙 빠져있었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걱정을 하니 촬영이 끝난 후 그나마 살이 오른 상태임을 알렸다. 촬영이 끝나 후 무엇을 가장 먼저 했냐고 물어보았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잠’이었다.
“내 스케줄 표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냥 ‘구암 허준’이었다. 스태프들이 이건 말도 안 된다고 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정말 펑크를 내고 싶었던 날에는 신기하게도 국가대표 축구 중계를 하더라. 그날 하루 비어주는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구암 허준’을 찍으면서 여유도 없이 달려갔던 것 같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으니 말 다한 거지. 전에는 얼마나 도시생활을 하고 싶던지 없던 짬을 겨우 내 매니저랑 카페에 가서 정말 커피만 한 잔 마시고 또 다시 급하게 돌아가서 촬영에 임했었다. 촬영이 끝나자마다 다른 거 일절 안하고 무조건 잠만 잤다. 그 덕에 뭘 하면 좋을 지 계획도 안 세워 놓은 상태다.”
사진=나무액터스 |
“힘든 상황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임감 때문이었다. 어차피 내가 하는 거, 내가 포기하고 손을 놓으면 욕을 먹는 건 나였고, 이 작품은 어찌 되는 대가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도 내 스스로 기특한 것은 그 많은 대사를 컨닝 한 번 안 했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직 컨닝하는 노하우가 없다. 별 수 있는 가, 그냥 외워야지.”
‘허준’은 김주혁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인연을 지닌 역할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배우 고(故) 김무생 역시 1975년 MBC 대하드라마 ‘집념’에서 허준을 연기했었다. 그 후로 40년하고도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김주혁은 아버지를 바통을 이어받아 허준의 일생을 살게 되었다.
“‘구암 허준’은 어찌 보면 내게 있어 운명 같은 작품이었고, 그래서 더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만약 고3때 이정도로 공부했으면 서울대 들어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촬영은 내가 각오했던 것보다도 더 힘들었다. ‘무신’ 할 때 이보다 힘든 촬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보다 더 힘든 촬영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 두 번의 사극을 치러냈으니 내 의지 여부를 떠나서 이제 정말 당분간 사극을 하면 안 될 것 같다.”
사진=나무액터스 |
“어떤 현대물을 해도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극을 통해 정신력이 강해졌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 다녀오면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느냐. 시기도 꼭 그렇고, ‘사극’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한 번 더 다녀온 기분이다.(웃음) 왜 배우들에게 사극을 하라는 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선해 보이는 눈매, 서글서글한 인상 덕분인지 김주혁이 연기해온 역할을 살펴보면 ‘악역’이 없었다. 이에 대해 김주혁은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니고, 정말 악역은 하고 싶은데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이왕 하는 악역 ‘연산군’은 어떠냐고 추천했더니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손 사레를 쳤다.
“그런데 이렇게 안한다고 했는데 차기작이 ‘연산군’이 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되면 일단 우리 회사 사람들이 제일 먼저 나를 죽일 거다. 전에 ‘무신’ 이후 사극 안한다고 했는데 바로 ‘구암허준’을 해서 이미 욕을 배부르게 먹은 상태다. 그러니 당분간 사극 만큼은…. 나 좀 도와 달라.”
1972년생인 김주혁의 나이는 올해 42세다. 보통 남자들의 결혼적령기를 30대 중반으로 잡는다고 해도 이미 그 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다. 나이가 나이인 결혼에 대한 압박감이 없을 수는 없을 것. 이와 관련해 혹시 만나는 여자 없는지 슬쩍 물어보았더니 정말 애잔한 목소리로 “연애상대가 있어야 공개를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내 인생에 여자와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다. 정말 서글펐다”고 답하며 땅이 꺼질 것만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결혼 보다는 아이에 대한 압박감이 있다. 지금 아이를 낳아도, 내가 예순이 넘어도 애가 겨우 스무 살 아니냐. 그런데 애는 갖고 싶다. 나와 닮은 아이와 함께 침대 속에서 꼼지락 거리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즐겨보고 싶다. 내가 아이를 정말 좋아한다.”
사진=나무액터스 |
“다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름다운 외모에 눈이 갔다면 다음에는 아름다운 성품에 마음이 가더라. 또 ‘저 아이는 어떤 집안 환경에서 자란 아이일까’라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집환 환경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좋은 가정에서 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사람을 말하다. 그런 사람에게 신뢰가 가더라.”
촬영도 끝나고 인터뷰도 끝났으니 특별하게 하고 있냐는 말에 김주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몇 년 만에 세상에 나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회부적응자가 된 느낌이란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다음 차기작 계획에 대해 물었다.
“가능하면 다음 작품은 영화를 하고 싶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