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송초롱 기자] 기존에 브라운관 속 재벌들의 모습은 뻔했다. 잘생긴 외모에 엄청난 재력, 뛰어난 지성까지 갖춘 완벽주의자의 표본이었다. 그런 ‘엄친아’ 재벌들은 극중 캔디 같은 가난한 여자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골인한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에서 재벌들은 달라졌다. ‘엄친아’에게 없는 찌질함과 집착 등이 새로운 재벌풍속도를 만들고 있다.
◇ 사랑은 집착이다…KBS 수목드라마 ‘비밀’ 조민혁(지성 분)
‘비밀’ 속 조민혁은 재벌총수의 후계자다. 멋진 외모를 갖고 태어난 까닭에 주변에 여자들은 항상 넘쳐난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현실을 지루해 하며 사랑에 목말라한다. 그러던 중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가난한 여자를 만난다. 이 부분에서는 여타의 재벌들과 똑같다.
하지만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특이하다. 이전의 재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는 ’눈물의 이별‘도 충분히 감수했지만, 조민혁은 자기 옆에서 멀어진 여자를 집착적으로 찾아내려고 한다. 또 불의에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여자의 모습에 강한 상실감을 느끼며 사고를 낸 가해자를 악랄하게 괴롭힌다. 사랑이 아닌 강한 집착을 드러내는 재벌 남자주인공의 찌찔한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시계방향으로 "비밀" 지성, "결혼의 여신" 김지훈 김정태, "미래의 선택" 정용화. 사진=공식홈페이지 캡처 |
대기업의 둘째 아들인 강태진은 항상 정치에 진출하고 싶어 한다. 회사 경영에는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맞기도 한다. 또 한 가정의 가장임에도 여자관계가 복잡해 어머니는 그의 뒤처리를 하고 다닌다.
셋째 아들인 강태욱은 집안이 대기업임에도 검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도 신선하게 느낄 수 있지만 진짜 다른 점의 그의 내면 모습이다. 드라마 속 재벌 남주인공들은 어릴 적부터 받아온 인성교육으로 뛰어난 분노 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강태욱은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을 거부하자 윽박지르고 강압적인, 마치 야수 같은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 본부장님 아닌 사원 입사…KBS 월화드라마 ‘미래의 선택’ 박세주(정용화 분)
박세주는 유명 방송국의 후계자다. 다른 드라마 속 재벌 후계자들은 본부장, 적어도 실장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박세주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방송국의 가장 말단인 리포터로 입사를 한다. 다른 사원들처럼 선배들에게 똑같이 혼나고, 업무를 배우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간다.
이처럼 요즘 드라마 속 재벌들은 식상한 캐릭터가 아니다. 사랑에 갈증을 느끼며 지나치게 사랑에 집착하거나, 계속되는 여자문제로 집에서 무시를 당하고 제대로 된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밑바닥 사원부터 일을 시작하는 등 더 이상 부모님 반대만을 고민하는 속편한 재벌이 아닌 것
이런 드라마 속 변화들은 그동안 막연하게 동경했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화 속에만 있을 법한 ‘엄친아’가 아닌 여러 가지 사연이 있는 모습들은 현실 속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욱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고 생기를 불어 넣는다는 평이다.
송초롱 기자 twinkle69@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