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 가슴에서 흐른다”
사고로, 자살로, 병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이들의 노래는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는 그들의 노래가 흐르고, 후배 가수들은 추모의 뜻을 담아 그들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
그 바탕에는 그들의 노래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이질감 없는 명반이라는 점이 크게 자리하고, 유작(遺作)이 갖는 힘까지 더해진다. 김광석, 김현식, 서지원, 유재하, 허성욱, 김정호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게 세상을 등졌다.
왼쪽부터 姑 김현식 김광석 유재하 |
◇ 故김현식, 얼굴 없는 가수의 아름다운 노래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대표적인 가수로 꼽히는 김현식은 1974년 고등학교 자퇴 후 이듬해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공부에 흥미를 잃고 서울 종로의 한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치는 것을 시작으로 1976년 가수 이장희의 주선으로 음반제작사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정식 데뷔가 무산됐다. 2년 후 1980년에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타이틀곡으로 한 1집 앨범을 발표했고 1984년에는 ‘사랑했어요’를 타이틀곡으로 한 2집, 1985년에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유재하와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그룹을 결성하였으며 이들의 연주로 3집 앨범을 녹음하고 1986년 ‘비처럼 음악처럼’을 타이틀로 한 3집 앨범을 냈다. 이 음반은 30만장이상이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나 계산된 기획에 의해 움직이는 방송의 속성에 거부감을 느껴 방송 출연을 자제했기 때문에 ‘얼굴 없는 가수’로 통했다.
그러다가 1987년 11월에 밴드 들국화의 전인권, 허성욱과 함께 대마초 상용 혐의로 또다시 구속되었다. 5개월 후 1988년 2월에 삭발을 한 채 63빌딩에서 재기 콘서트를 벌였다. 1988년 9월에 ‘언제나 그대 내곁에’를 타이틀로 한 4집 앨범을 발매했고, 1990년에는 3월에 ‘넋두리’를 타이틀곡으로 한 5집 앨범을 발표했다. 재기 콘서트 이 후 밤샘 녹음, 폭음, 줄담배 등은 그에게 치명적인 건강 악화를 불러와 병원에 실려 가는 횟수가 늘어났고 그 와중에 그의 유작 앨범인 6집 녹음했다. 하지만 음반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11월 1일 자신의 자택에서 간경화로 별세했다. 향년 33세.
◇ 故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제 노래가 들릴 거예요”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한 김광석은 같은 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했다. 이후 1987년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인 1989년 솔로로 데뷔해 큰 인기를 누렸다.
또 1991년 2집, 1992년 3집, 1994년 마지막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이후로도 리메이크앨범인 ‘다시부르기’를 내놓고, 꾸준한 공연을 해왔던 김광석은 1996년 1월 6일 향년 3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 故유재하, 그가 남긴 단 한 장의 앨범
1981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한 유재하는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 편곡은 물론, 여러 악기에 능통했고 대학 졸업을 앞둔 1984년 클래식과 재즈를 대중가요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세웠다. 대학 재학 시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조용필은 훗날 유재하의 대표곡이 되는 ‘사랑하기 때문에’를 자신의 7집 앨범에 먼저 취입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86년에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했다. 1987년 8월에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한다. 당초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심의에서 반려되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내지 못했다.
음반 발표 후인 1987년 11월 1일 26세였던 유재하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강변북로부근에서 술에 취한 친구가 몰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 했다. 사망 후 일반인들과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 유재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으며, 음악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姑 김현식 김광석 유재하 추모앨범 재킷 |
◇ 이들과 한 시대에 살지 못한 것이 한(恨)스럽다…
위 세 사람은 작품성으로도 인정받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이들을 통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유재하가 사망한 이후 그의 아버지 류일청은 아들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음반수익과 성금을 기탁하여 ‘유재하 음악장학회’를 설립했다.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또 유재하의 노래는 1985년 조용필을 필두로 이문세, 한영애,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박진영, DJ DOC, 조규찬, 왁스, 이기찬, 정수라, 나얼 등 수많은 가수들을 통해 불렸으며 1997년에는 후배 음악가들이 헌정 앨범인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를 발표했다.
김현식은 사망 후 발표된 6집 앨범 타이틀곡인 ‘내 사랑 내 곁에’로 1991년 크게 히트했으며, 1996년에는 병상에서 즉흥으로 녹음한 노래들 중 미발표된 노래들로 구성된 앨범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가 발표되었고, 2002년 1월 22일에는 다시 병상에서 통기타 반주로 녹음한 미발표곡들을 모은 앨범인 ‘더 시크베드 라이브’(The Sickbed Live)가 발매되기도 했다.
1991년 2월 9일에 63빌딩에서 김수철, 이정선, 전영록, 강인원, 조하문, 한영애, 김태화, 봄여름가을겨울, 최호섭, 권인하 등 30여 명의 가수들이 참가한 추모콘서트가 열렸으며, 2000년에는 사망 10주기를 맞아 김민종, 한동준, 신승훈, 김종서, 임재범, 윤종신 등 후배 가수들이 헌정 앨범을 발매했다.
김광석 역시 그가 떠난 이후 매년 추모 콘서트가 열렸으며 2008년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생전에 그가 수많은 공연을 펼쳤던 서울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또 추모음반 ‘가객-부치지 않은 편지’ ‘김광석 Anthology-다시 꽃씨되어’와 사후 앨범 ‘김광석 콜렉션’ ‘풍경소리’ ‘클래식’ ‘김광석 나의노래’ 등이 발매되는 등 그의 노래들은 현재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 ‘먼지가 되어’ 등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또 최근 김광석의 음악들은 뮤지컬 ‘그날들’ ‘디셈버’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을 통해 다시 조명됐고, 각종 방송을 통해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최근 아이돌 가수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요계의 음반시장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판매량을 자랑한다. 문화부 공식 지정 대중음악차트인 가온차트에
이는 여전히 그의 음악이 대중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치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 목소리는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