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역 출신의 20대 초반 배우가 한 술자리에서 토로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요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서슴없이 반말하고,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컸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 가면 스태프들이 반말하는 경우가 있었죠. 늦게 데뷔한 친구들에게는 존댓말 하다가 친해지면 반말을 하는데 제게는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말을 놓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보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죠. 그래서 갓 20대가 된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요.”(웃음)
김민정은 “나 같은 경우는 나이 있으신 어른 중에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머리를 만지는 분들도 계신다”며 “그런데 이제는 그런 분들을 만나면 엄마 같은 생각이 들어 괜찮다”고 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나 보다.
하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목을 받고 자랐다. 여자 중ㆍ고등학교 시절 교실에만 앉아있으면 ‘포스 있는’ 선배들이 그를 지켜봤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선들에 당당해지지 못했다고 한다. 뭘 잘못한 건 아니었으나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일종의 신념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규율을 어긴 적이 없어요. 귀밑 몇 cm 커트 머리라고 하면 딱 거기에 맞춰서 잘랐어요. 복숭아뼈 위 몇cm 양말을 신어야 한다고 하면 다 지켰죠.”
김민정은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게 싫었다. 그런 청소년기를 당시에는 억압이라고 생각 안 했는데 성인이 되니 차곡차곡 쌓여있던 것 같더라”며 “어느 순간 쌓여있던 것이 쏟아지는 걸 발견하는 날이 있긴 있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또 “10대 때 잘한 일이라면 애써 어른 같이 보이지 않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0대 후반 즈음에 성숙한 친구들이 나와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묵묵히 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기억했다. “일부러 성숙해 보이려고 하면 사람들도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예쁘게 보지 않았을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밤의 여왕’(감독 김제영)에서는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다른 매력들이 철철 넘친다. 아내의 심상치 않은 과거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소심 남편 영수가 아내 희주의 흑역사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려낸 로맨틱 코미디 ‘밤의 여왕’에서 제 나잇대의 성숙한 매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깜찍한 모습은 이미 알려졌는데 섹시하고 청순한 모습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지 몰랐다. 간호사 코스프레와 섹시 춤도 잘 소화했다.
김민정은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아내의 흑역사를 찾는 영화’라는 소개 기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기사에 내용이 풍부하지도 않았는데 잠깐 읽어본 뒤, 속된말로 필이 꽂혔다. 시나리오를 요청해 읽어 보고 바로 참여를 결정했다.
“사실 배우로서 보여줄 모습이 많은데, 그런 걸 다 보여줄 작품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런 영화에 목말랐던 게 사실이죠. 감독님이 희주라는 캐릭터를 나를 생각하며 쓴 건 아니었지만, 왠지 제 생각에는 나를 위해서 쓴 것만 같은 거예요. 정말 좋았죠.”
“이번 영화에서 제가 해야 할 게 많았고, 잘해내야만 했어요. 좋은 반응을 주시는 건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죠. 흥행 성적이 더 좋았으면 날아갈 정도였을 텐데 그렇게 흥행이 되진 않아 조금 아쉽긴 하네요.”(웃음)
극 중 호흡을 맞춘 천정명과 열애설이 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측이 적극적으로 부인해 해프닝으로 끝났다. 결혼 적령기 스타들이 친하게 지내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김민정은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쿨하게 답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