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두정아 기자] “‘시청률 퀸’이요? 그저 또 하나의 산을 넘었구나 싶어요.”
3연타석 시청률 홈런에 성공하며 ‘흥행보증수표’ 임을 자랑하는 배우 문채원이 환하게 웃는다. 의사 가운을 벗은, 브라운관 밖에서의 모습은 한층 더 밝아 보였다.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기리에 막을 내린 KBS 월화드라마 ‘굿닥터’의 차윤서로 살았던 지난 3개월의 소회를 풀어냈다.
전문성보다는 휴머니즘을 내세운 ‘굿닥터’는 등장인물들의 성장기를 담아내며 큰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기존의 의학드라마와 노선을 달리하는 ‘힐링’을 선사하며 배우들의 열연과 따뜻한 이야기로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처음 이 드라마의 시놉과 대본을 읽었을 때 느꼈던 따스함과 기분 좋은 떨림이 끝까지 잘 전달된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시청자와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촬영 내내 보람을 느끼며 작업했어요. 건강하고 행복한 기운의 순수한 드라마를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둬 기쁩니다.”
사진=이현지 기자 |
“대부분의 의학드라마는 남성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남녀의 러브라인이나 병원 내의 권력 다툼이 주가 된 경우가 많았죠. 오래전 즐겨봤던 ‘종합병원’ 같은 느낌의 의학드라마를 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무언가 따뜻하고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무엇보다도 자폐 3급과 서번트 증후군 진단을 받은 천재 의사 박시온(주원 분)과의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기도 했다. 조금은 서툰, 그래서 더 풋풋한 사랑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상대 배우와의 좋은 궁합 덕분이었다.
문채원은 “주원의 성실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런 친구와 작업을 했다는 것이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며 “화려하고 멋진 역이 아니라서 선뜻 탐내기 어려운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과감히 선택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것 같다. 우리 드라마의 중심축을 잘 잡아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저와 주원 씨를 비롯, 대부분의 출연 배우들이 의학드라마가 처음이었어요. 매번 ‘나 잘했느냐’고 질문을 하면서 꼼꼼히 모니터링 했고, 상대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면서 작품을 완성했어요. 상대의 연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받고 주자는 분위기였죠. 여느 작품보다 팀워크도 좋았고 열심히 함께 만들어갔다는 부분에 만족도도 높았어요.”
문채원은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이 모두 큰 성공을 거둬 ‘시청률 퀸’으로 불릴 만큼 운이 좋았다. 지난해 송중기와 호흡을 맞췄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는 동시간대 1위를 지켰고, 2011년에는 첫 사극 도전이었던 ‘공주의 남자’가 시청률 20% 중반대를 기록,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세 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찬란한 유산’(2009)과 ‘바람의 화원’(2008) 또한 흥행과 작품성까지 겸비한 수작으로 남아 있다. 단순히 ‘작품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문채원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지지만, 하는 작품마다 잘되는 비결이 궁금했다.
“흥행 배우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모든 20대 여배우의 고민일 거예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책임감이 들고 감사할 뿐이죠. 작품운이라기 보다는 인복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작업을 했느냐에 따라서 갈리거든요. 감독과 동료배우들 덕이 커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많이 노력해요. 누군가 나와 작품을 하고 나서 ‘인복이 많다’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홈런을 날린 것은 아니다. 그의 데뷔작인 SBS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는 애초 24부작으로 기획됐었으나 시청률 저조로 8회 만에 조기 종영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믿고 보는 배우’의 대열에 선 지금이 마치 험난했던 신인 시절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이현지 기자 |
이번 작품은 무엇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장애인에 대한 시선의 변화는 물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대역이 장애를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평소 감성적인 부분이 건조해지면 종종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봐요. 다큐에는 특히 장애를 가진 분들의 사례가 많이 나와요. 다큐를 통해 이미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었죠. 하지만 드라마를 하면서 나도 미처 몰랐던 편견이나 생각들이 미세하게 변해가는 걸 느꼈어요. 연기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연기에 늘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싶어서 연기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열등감과 결핍은 연기에 있어 좋은 에너지원이 된다. 문채원은 “연기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늘 한다”며 “가끔은 그냥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고 마음을 다잡지만 그게 현명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은 욕심 많은 배우다.
“작년부터 연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더 좋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좋은 것일까. 노력했지만 그만큼 성과가 나오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특히 목소리 톤이 중저음이라, 늘 콤플렉스로 여겼죠. 물론 일부러 하이톤으로 낼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고 효과적으로 들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요. 단점이 너무 많아요. 창피해서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연기에 너무 몰입한 탓일까. 어느 날에는 작가로부터 ‘여배우가 외모에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단다. 그는 “외모는 포기했느냐는 말도 들었다. 연기자로서 관리를 못한 모습은 부끄럽겠지만 작품을 위해 망가지고 예쁘지 않게 나오는 것은 상관없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대사가 있어요. ‘좋은 의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에 답을 하는 장면이었죠. 가슴을 울린 답은 예상외로 명료했는데 바로 ‘어떤 게 좋은 의사일까 고민하는 모든 의사’였어요. 그러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처가 많이 있어야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남의 아픔을 헤아리려면 자기부터 아픈 게 뭐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배우로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대사였죠.”
‘굿닥터’가 시청자에게 잊고 지냈던 순수와 동심을 떠올리게 했다면, 문채원에게는 배우로서 ‘좋은 배우’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그는 “의사라는 멋진 직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좋은 의사’라는 대사가 나올 때마다 ‘좋은 배우’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며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극중 대사처럼 그런 것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드라마의 대표 장르를 섭렵하다보니 이제는 영화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차기작은 영화가 될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 스크린에서 문채원의 연기를 만날 수 있다.
사진=이현지 기자 |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은 배우 문채원. 예쁘고 화려하기만 한 여배우들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그에게는 특유의 멋이 있었다. 튀지는 않아도 무게감만은 남다른 문채원의 행보가 자꾸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두정아 기자 dudu0811@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