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부산,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는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 중이다.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중,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송우석은 대기업의 스카우트를 받았음에도 이를 거절하고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섯 번의 공판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 ‘변호인’
[MBN스타 여수정 기자] 특유의 호탕한 미소로 순간의 어색함을 무마하는 송강호는 자꾸 만나보고 싶은 느낌을 준다. 2013년에만 해도 이미 ‘설국열차’와 ‘관상’이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고, ‘변호인’은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설국열차’는 934만1572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관상’은 913만3937명의 관객 수를 돌파했다. 때문에 개봉을 앞둔 ‘변호인’ 역시 좋은 결과를 예고 중이다. 만약, ‘변호인’까지 900만 관객을 넘으면 3연타 흥행배우가 되는 셈이다.
세 작품 모두 인터뷰를 진행했기에 송강호에 대해서는 알만큼 이미 알려져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이 되지만 이 같은 걱정을 단번에 날릴 정도로 송강호의 입담과 재치는 넘쳤다. ‘설국열차’ 속 기차 시스템 설계가 남궁민수로 시작해 ‘관상’에서의 최고의 관상쟁이 내경 그리고 ‘변호인’의 변호사 송우석 까지 송강호의 영화 속 직업은 다양했고 맡은 배역에 제대로 몰입해 충실한 연기를 선보인 송강호의 변신은 자연스럽게 엄지손가락을 들게 만든다.
“알다시피 나는 다작배우는 아니다. 많이 찍어봐야 1년에 한편, 2년에 세편 정도다. 그러나 올해는 어찌하다보니 출연작이 몰렸다. ‘설국열차’부터 ‘관상’ ‘변호인’까지 촬영은 촉박하지 않게 순서대로 진행했다. ‘설국열차’는 세계배급이라는 점으로 인해 작품 개봉이 빨랐고, ‘관상’은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가 가을과 명절에 어울려 추석에 개봉을 한 것이다. 많은 관심과 성원으로 좋은 결과를 얻어서 정말 좋다. ‘변호인’이 올해 마지막 개봉작이다. (웃음)”
↑ 송강호가 ‘변호인’으로 다시금 스크린을 찾았다. 사진=이현지 기자 |
“글쎄. 사실 나는 봉준호 감독과 10여 년 동안 작품을 함께 해왔다. ‘설국열차’는 그 당시 출연 제의를 받은 게 아니라 이미 봉 감독의 머리에 있을 때부터 ‘같이하자’고 제안을 받은 작품이다. 그래서 함께 촬영하게 된 것이다. 영화 팬들이 봉 감독은 좋아하기도 하고 프로젝트 자체가 보기 드물어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상’은 열심히 촬영하기도 했지만, 사실 사극은 처음이라 부담감이 있었다. 또 역사적 배경에 허구가 섞여서, (극을) 만들어 나가는게 어려웠다. 물론 찍으면서 자신감이 높아져 ‘묵직한 사극 한편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인’은 흥행에 대한 생각보다는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는가에 집중했다.”
‘설국열차’와 ‘관상’은 ‘변호인’의 송강호도 기대케 했다. 주로 형사 등의 역할을 맡았던 송강호는 이번엔 변호사로 변신했다. 송강호 작품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직업 탄생인 셈이다. 송강호는 “변호사까지 했으니 두려울 게 없다. 좋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니 무엇인가 기분이 좋더라.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 다들 농담으로 ‘다음에는 의료인 어때?’라고 했다”며 앞으로 점점 다양한 직업과 무한변신으로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 준비를 미리 예고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변호인’의 무엇이 그를 매료했을까.
“이야기가 잊혀 지지 않더라. 처음에 거절했는데 자꾸만 생각이 나더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강렬하게 각인이 되고 처음에 없던 자신감이 조금씩 차오르더라. 작품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 인생의 단면을 소재로 했지만 1980년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겼다.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가슴을 뛰게 하는구나’를 느꼈고 이야기의 힘 덕분에 출연을 결심했다.”
작품의 이야기에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다는 송강호의 말처럼 ‘변호인’에는 그는 물론 대중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총 다섯 번의 공판장면이 등장한다. 각 공판마다 성격과 특징이 다르기에 어느 장면 하나 놓칠 수 없다.
“사실 배우 송강호와 변호사는 안 어울린다. (웃음) 서민적이고 소시민적인 느낌이 있기에 ‘변호인’의 송우석은 직업으로서의 변호사보다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변호사가 아닌 변호인이다. 사람이 사람을 변호한다는 것, 그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다. 각 공판마다 특징이 있다. 1차 공판은 공판의 배경과 모순된 배경을 설명하고 2차는 변호사로서의 송우석의 면모를 보여준다. 3차는 인간 송우석의 모습과 따뜻한 감성, 자식을 그리워하고 보호하고자하는 마음을 대변한다. 4차는 클라이맥스로서의 강한 에너지를 , 패배를 하는 5차 공판까지. 각 공판마다 특징이 있기에 리듬감이 존재한다.”
다섯 번의 공판장면 중 명장면은 단연 차동영 경감 역을 맡은 곽도원과의 대결이다.송강호와 곽도원은 그동안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단숨에 관객들을 휘어잡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기 대결은 너무나 완벽했다.
“각오를 했다. 앞부분 소소한 일상을 촬영할 때는 늘 해오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현장에 가서 촬영에 임했다. 공판은 대사도 대사지만 스스로 감정의 리듬감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 그래서 애초에 처음 배우 리딩할 때 내 연기의 방향을 보여줘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양우석 감독이 참고하거나 그로부터 내가 참고사항을 들을 수 있기에 그 리딩 조차도 준비했다. 리딩 당시 다들 깜짝 놀라더라. (웃음) 사무실에서 리딩을 진행했는데 옆방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뛰어오기도 했다. 보통 영화 리딩은 바로 촬영해야 되기에 연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드라마와 다르다. 가볍게 임하는 자리인데 내가 정색을 하니까 다들 놀라더라. (웃음) 본 촬영을 하는데, 100중 80까지는 만들어 놔야 됐다. 대사 외우는 건 기본이고 법정드라마가 평면적이고, 제한된 공간과 동선 때문에 지루해 질 수도 있다. 그래서 좀 더 입체적으로 각각 재판의 분위기도 리듬도 달라 더욱 열심히 연습해 준비했다. 나 스스로 열심히 리허설을 하기도 했으며 미리 4차 공판에서 클라이맥스를 찍겠다고 준비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하필 내가 못 먹는 음식만 먹게 되더라. ‘의형제’의 닭백숙과 ‘변호인’의 돼지국밥. 내가 못 먹는 음식이지만 다들 너무도 맛있게 먹는다고 하더라. (웃음) 육고기보다는 채소와 생선을 좋아한다.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왔으면 한다. 요트를 타는 장면은 현장에서 기본적인 것은 배웠다. 다들 내가 요트를 타는 장면에서 많이 웃더라. 지도하는 분 덕분에 어렵지는 않았지만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잡고있는 게 힘들더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변호인’은 이미 화제의 중심에 섰다. 주연 배우로서 이에 대해 고민이 없지 않을 터. 때문에 송강호는 개봉이후 관객들의 반응을 더욱 궁금해 했다.
“떨리고 긴장된다. ‘변호인’을 정말 편견과 선입견 없이 봐줬으면 한다. 그래서인지 언론배급시사회 당시 약속도 안하고 부탁도 받지 않았는데 다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편견을 가질까봐 배우들과 감독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같다. 물론 색안경을 끼고 보면 안 벗겨지겠지만 편하고 색다른 영화로 보길 바라고 원한다. 때문에 기대도 되고 설레기도하며 궁금하다. 여러 가지 마음이 많다.”
익히 알려졌듯이 송강호는 함께 출연하는 후배이자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에게 연기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구에게 이래라 저래라 라고 한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누군가를 혼내봤다. 곽도원과의 고문장면을 연달아 촬영해야 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까지만 해도 임시완이 연기도 잘하고 열정을 보여 아이돌임에도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힘든 촬영이 시작되기에 마음가짐을 잘못하면 앞으로 찍을 장면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실제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해야 되기에 너의 마음과 그들의 마음이 다르면 안 된다. 때문에 정신무장을 해야 된다고 야단을 쳤다. 고문장면이 시작되고 나는 행여 임시완에게 부담을 줄까봐 촬영장에 일부러 안 갔다. (나의 야단 덕분인지) 아주 고문을 잘 받았다. (웃음)”
임시완에게 송강호가 친 야단은 야단이 아닌 사랑의 쓴소리였다. 자신의 쓴소리 덕분에 임시완이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다고 자부하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후배를 향한 선배의 넓은 마음을 보여줬다. 호탕한 그는 앞으로 어떤 배우로서 남길 바랄지 궁금해졌으며 동시에 스크린이 아닌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는 없을까.
↑ 사진=이현지 기자 |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