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웃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최근 방청객은 다양한 형태로 방송에 참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방청객은 KBS2 ‘안녕하세요’나 JTBC ‘마녀사냥’ 등이다. 방송에 함께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방청객의 존재감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오래 전부터 방송에 참여한 이들이 있다.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효과음’ 역할을 하는 방청객들이다. 이미 만들어 놓은 방송 콘텐츠에 웃음, 야유, 박수를 보내면서 프로그램을 더욱 알차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방청객이 아닌, 영상을 보며 리액션을 보내는 이들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았다.
먼저 인터넷을 뒤적거려 방청 아르바이트 업체와 접촉했다. 검색 한 번이면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업체들이 있었다. 이름, 나이, 직업(물론 직업은 ‘무직’으로 속였다), 동행인, 방청을 하고 싶은 프로그램과 날짜를 적어 업체에 문자를 보냈다.
무조건 ‘문자’로만 신청을 받는단다. 이유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신청을 받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빨리 답변이 왔다. 그런데 “많이 웃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겠어요?”라며 덤덤하게 물어왔다. 흠칫 했지만 ‘웃는 게 별 건가’ 싶어 당차게 “그럼요”라고 맞받아쳤다.
드디어 D-DAY. 이른 아침 방송국에 도착하자 20여 명의 사람들이 방청을 위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한 관리자의 인솔 하에 인원체크를 마치고 방청 준비를 시작했다. 아니, 그냥 스탠바이만 한 채 마냥 기다렸다. 함께 간 지인과 한참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다 현장을 정리하는 관리자 한 명이 드디어 스튜디오로 ‘우리 무리’를 데려갔다.
이제 시작하나 싶었는데 웃음소리 녹음에 앞서 연습을 하겠다며 신호를 준다. “꺄르륵” 처음에는 이러한 풍경과 그저 신호 한 번에 웃음보를 터뜨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데 관리자는 “소리가 작다”며 다시 연습을 시킨다. “꺄르륵”…여전히 소리가 작단다. “꺄르륵” 몇 번이고 반복되는 웃음소리 연습에 벌써 지쳤다.
한참이나 웃어댔더니 안면에 마비가 올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영상이 재생되고, 웃음소리 녹음이 시작됐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고 관리자의 신호에 맞춰 또 한 번 “꺄르륵” 무조건 크게 웃어댔다. 영상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신호에 맞춰 웃으려니 오히려 영상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노래가 절로 생각났다. 흡사 건들면 소리가 나는 인형이 된 느낌이랄까.
그렇게 2시간 30분 정도 웃고 “수고했다”는 한 마디를 끝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녹화는 예정된 시간에 맞춰 끝났지만, 현장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오늘은 일찍 끝난 거다. 말도 못하게 시간이 늦어질 때도 있다. 분위기에 따라 시간이 기약 없이 늘어나는 일이 태반이다. 중간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그렇게 되면 돈을 받을 수 없어서 끝까지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홀가분하게 자리를 떴다.
관리자의 인솔에 맞춰 스튜디오에서 나오자 아르바이트 비용 8000원을 현금으로 손에 쥐어줬다. 뭔가 느낌이 묘했다. 함께 간 후배 기자와 함께 서로 “고생 많았다”며 순댓국 한 그릇 먹고 들어가자고 입을 모았다. 아침부터 소리소리 지른 터라 꿀맛이었다. 계산대 앞에 서서 한참동안 아르바이트의 대가로 받은 8000원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결국 그 돈으로 계산을
확실히 제자리에 앉아서 웃기만하면 되는 편한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을 접해보니 허탈함만 남았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집으로 향했다. 누가 웃는 게 쉽다고 했던가.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옛말이 새삼 와 닿았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