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 분야 최고의 베테랑이자 현 공군 특수부대 CCT 훈련교관인 민세훈(박희순 분) 대령. 그는 과거 지동철(공유 분)과의 사건 때문에 훈련 교관으로 강등됐다. 지동철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 민 대령에게 어느 날 그를 잡아오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민 대령은 자존심과 명예회복을 위해 그 누구보다 지동철 잡기에 열을 올린다. 민 대령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 중 지동철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쫓고 있음을 감지하고 무엇인가 수상쩍음을 느낀다. 지동철을 쫓을 것인가? 지동철을 둘러싼 음모를 쫓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용의자’
[MBN스타 여수정 기자] 많은 영화 인터뷰 일정을 소화한 탓인지 박희순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있는 듯했다. 피곤해 보인다는 걱정에 “아니다. 괜찮다”며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 영화에서 공유보다 더 돋보이고 멋지다는 칭찬을 건네자, 수줍게 웃으며 “아니다. 일부러 어깨가 듬직해 보이는 옷을 입고 옷깃을 세웠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겸손도 잠시 “위에서 공유가 인터뷰 중인데…”라는 말로 웃음을 안겼다.
적절한 농담과 진담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박희순. 밝은 이미지와 달리 ‘용의자’ 속 그의 모습은 유쾌하기보다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잔뜩 인상 쓴 얼굴에 남자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죽재킷을 입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목소리 톤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동안 주로 센 역할을 도맡았기에 박희순에게는 카리스마와 남성미가 가장 어울린다. 그러나 언론배급시사회나 방송에서 본 모습은 너무도 유쾌 상쾌 심지어 통쾌하기 까지 하다. 마초와 유쾌 사이를 오가며 말 그대로 반전에 반전을 지닌 남자임을 증명케 한다.
“나는 거친 것이 없고 그냥 따뜻하다.(웃음) 성향상 마초를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마초 중에는 진짜 남자다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마초는 남성성을 강조해 조금은 오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일상 속의 마초는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러나 ‘용의자’ 속 민세훈 대령처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후배를 아낄 줄 아는 마초라면 그건 매력이 있다. 나는 격식을 차리기보다는 편한 게 좋다. 후배를 봐도 친구처럼 지내는 게 좋고 각 잡는 건 싫다.”
↑ 박희순이 ‘용의자’로 관객과 만났다. 사진=천정환 기자 |
배역에 동화되려고 노력한다는 박희순의 말처럼 민세훈과 그는 묘하게 닮았다. 거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속은 따뜻하고 정이 많다는 점이 박희순과 민세훈에게서 겹친다.
“원신연 감독이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라이언킹’의 무파사를 참고하라고 했다. 거칠고 날것의 느낌이지만 안에는 따뜻하고 정이 있는 그런 인물로 민세훈을 표현하고 싶었다. 민세훈은 국가에 대한 충성도 중요하지만 정의로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다. ‘용의자’ 첫 장면을 보면 부하를 구하는 민세훈의 모습이 나온다. 민세훈의 과거를 시시콜콜 설명하는 것보다 이 장면이 인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욕심 같아서 감독에게 액션장면을 더 넣어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 자체의 임팩트가 강해 만족한다.”
‘용의자’는 강렬하다. 민세훈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이 영화의 포문을 열고 공유 박희순의 카체이싱, 추격전, 총격전, 주체격술, 암벽등반, 한강낙하 등 화려한 액션 덕분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리고 손에 땀이 마를 틈이 없다. 초소피드 리얼 액션이라는 홍보문구에 걸맞게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리얼한 액션장면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도 재미있고 흥미로운데 직접 경험한 배우의 입장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내가 관객 입장에서 액션장면을 봐도 한국에서 찍었나 싶을 정도다. 원 감독 역시 액션 감독 출신이라 준비를 많이 해서 믿음이 생겼다. 화려한 액션들은 철저한 준비와 계산 덕분에 가능했다. 관객들은 부담 없이 이를 즐기면 된다. 카체이싱 만큼은 할리우드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 같다. 특히 후진으로 간, 긴 행렬이 가장 인상 깊었다. 민세훈과 지동철이 앞뒤로 가는 게 어떻게 보면 서로 거울을 보는 듯 양면성이 투영되는 것 같다. 민세훈은 지동철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그 역시 나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셈이다. 두 사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인물이다.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받쳤는데 갑자기 좌천되고 이용당하는 모습이 닮았다. 우리가 서로 닮았구나가 카체이싱이 장면에 투영된 듯하다.”
배역에 대한 애정과 ‘용의자’ 속 액션장면을 극찬하는 박희순의 모습은 얼마만큼 작품을 사랑하는지 느끼게 했고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거칠고 착한남자 민세훈 대령을 표현한 듯하다.
“‘용의자’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나의 2년을 바친 작품이다. 물론 잠시 드라마를 하기도 했지만 영화로는 2년을 바쳤고 거기에 2014년 새해까지 맞이하니 3년을 받친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의미 있고 뜻 깊고 애착이 간다. 무엇보다 원 감독과 ‘세븐 데이즈’ 후 두 번째 만남이라 기대됐고, 그의 7년만의 복귀이기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공유라는 좋은 친구를 얻은 것도 좋다. 여러 가지로 고맙다. (웃음) ‘용의자’ VIP 시시회가 끝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원 감독과 합이 잘 맞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친구와 계속 작품을 하고 싶다. 아예 계약할 때 옵션으로 원 감독작이라면 출연 오케이라고 적어야겠다. (웃음)”
↑ 박희순은 ‘용의자’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민세훈 대령 역을 맡았다. 사진=천정환 기자 |
“‘세븐 데이즈’ 때부터 느꼈지만 원 감독은 작은 역할이라도 함부로 소비시키지 않는 감독이다. 잠깐잠깐 나오는 역할에도 정당성을 주고 그 역이 돋보일 수 있게 배려한다. ‘용의자’도 마찬가지다. 공유에 의한 이야기지만 극을 이끌어가고 중심을 잡는 건 나와 반대 축의 조성하다. 그래서 처음 촬영 때부터 주인공은 세 명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박희순은 SNS로 관객과 자주 소통한다. 촬영장 분위기가 담긴 사진을 올리거나 다양한 이벤트 등으로 “열심히 촬영 중이니 기대해주세요”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번에도 역시 ‘용의자’에 대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진과 사연으로 관객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촬영하느라 바쁘고 피곤해도 SNS를 하는 박희순을 보면 그저 놀랍다.
“SNS를 하는 건 작품에 대한 사랑이다. 흥행에 대한 한(恨)이기도 하다. (웃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제하는 편이지만, 현장에 대한 이야기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 자랑하고 싶고 관객들과 미리 소통하고 싶은 그런 부분이 있다. ‘용의자’가 잘 되면 공유의 뒷이야기를 SNS에 해볼까 한다. (웃음)”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기만 한 박희순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센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역학을 했기에 2014년에는 명랑쾌활한 역으로 대중들을 만났으면 싶다.
“사실 연극할 때 로맨스는 내 담당이었다. 그러나 영화에 오면서 센 역할을 많이 접해 로맨스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주로 센 영화를 찍다가 ‘그녀의 연기’라는 단편 영화를 찍게 됐다. 공효진과 함께 제주도에서 촬영했는데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김태용 감독과도 합이 좀 맞았던 것 같다. 로맨스 영화도 찍어보고 싶고 완전 코미디 영화도 찍고 싶다. 드라마 출연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하게 된다면 코미디 장르를 하고 싶다. 각 잡고 무게 잡고 잘난척하는 것보다는 편안하고 일상적인 역에 도전하고 싶다. 그러나 계속 보고 있는 작품이 거친 상남자다. 스스로 무엇인가 새로운 게 없을까하고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용의자’에 대한 박희순의 사랑과 자랑은 인터뷰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그칠 줄 몰랐다. 관객에게 전한 ‘용의자’ 보는 팁은 극장을 찾기 전 눈여겨 볼만하다.
↑ 사진=천정환 기자 |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