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자체보다 노래 부르는 모습에 더 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것 같아 여자 가수로서 솔직히 부담도 된답니다.”
최근 소속사를 옮기고 가수 인생 제 2막의 출발점에 선 숙희(본명 진정연)가 방송 무대에 오르는 속내를 담담하게 털어놨다. 라이브 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숙희의 담담한 고백은 라이브 고수들조차 ‘비디오’ 캡처 굴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최근 가요계의 웃지 못할 해프닝을 대변하는 듯 했다.
평소 털털한 성격이지만 “노래에서 만큼은 예민한 편”이라고 자평한 숙희는 “무대에서만큼은 어떤 실수도 용납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실수가 아님에도 마치 실수처럼, 혹은 굴욕으로 비춰지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한 번은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했는데 숨을 들이쉰 장면이 캡처가 돼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더라”는 것.
여자 가수에게 요구되는 긴장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한 때 다리보험에 가입했을 정도로 훌륭한 각선미를 지닌 숙희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을 감안해보면 가수로 활동한다는 건, 특히 솔로 여가수로 활동한다는 건 여간 녹록한 일이 아니다.
가수 데뷔 전, 스무살 때부터 무대가 일터였던 숙희였지만 방송 카메라가 자신에 집중된 상황은 여전히 낯설고 긴장되는 일이다.
“솔로는 책임감이 무겁잖아요. 멤버들과 같이 있다면 실수도 조금은 가려질 수도 있고 한데, 혼자 다 책임져야 하니까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에요.”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돌고 도는 가요계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바보가슴’, ‘라라라’, '가슴아 안돼’ 등을 발표해 음원 강자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친숙하지 않은 이름이니 말이다.
“음악 프로그램 출연 자체도 어렵고, 이런저런 상황으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못 거뒀을 때의 실망감도 있었어요. 때로는 괜히 가수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이름 때문에 트로트 가수냐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속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대에 섰을 때, 제 노래를 따라불러주는 사람을 보면 역시 노래 하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숙희는 2009년 5월 SG워너비와 함께 부른 디지털 싱글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최근 ‘왕가네 식구들’ 왕대박(이윤지 분)-최상남(한주완 분) 커플의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를 담아낸 OST 파트3 ‘마취’로 다시금 대중 앞에 회자되는 숨은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실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은 아니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부터 노래와 함께 살아온 일상의 공력이 응축된 결과다. 스무 살 때부터 유명 가수들의 공연에 코러스로 수 차례 무대에 섰기 때문.
숙희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관객들에게 전달된 가수 공연만 해도 이적, 김동률, 김범수, 성시경, 휘성, 박정현, 빅마마, 바비킴, 바이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숙희는 가이드 녹음 아르바이트차 녹음실을 방문했다가 조영수 작곡가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 땐 가수 할 생각도, 자신도 없었거든요. 내가 가수는 무슨 하면서 정중히 거절했죠. 그러다 몇 년이 지난 뒤 코러스 활동에 회의감도 들고 스포트라이트 받고 싶은 욕심이 생길때 쯤 다시 제안을 받게 됐어요. 과감히 모든 걸 접고 가수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감독님, 작가님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하셨어요. 세션 오빠들도 다들 저를 보고 웃어 주셨죠. 내가 진짜 가수가 됐구나 실감이 났는데, 가수 자리에 앉으니 엄청 떨리더라고요. 무대 중앙에 섰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러워 펑펑 울었습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가슴에 안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도약을 꿈꾸는 숙희는 자신을 발굴해 준 조영수 작곡가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영수 오빠와는 평생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싶다”며 “조만간 새 둥지에서 나온 앨범을 들고 꼭 찾아 뵙고 싶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백지영의 뒤를 잇는 OST 여왕을 꿈꾸는 숙희는 향후 B1A4 같은 아이돌 그룹은 물론, 성시경과 듀엣을 해보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드러냈다.
“이적, 성시경 선배님처럼 노래를 통해 힐링을 주는 존재가 너무 부러워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노래에 위로받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계속 노래할 겁니다.”
데뷔 5년쯤 됐으니 솔로 여가수로서 쉽지 않은 단독 콘서트도 욕심 내보겠단다. “주위에 여자 팬이 많은데, 실연의 아픔을 가진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여자를 울리는 콘셉트지만 반전 매력도 기대해 주세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JG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