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아라(사진=강영국 기자) |
성나정의 이 부산 사투리 대사를 끝으로 칠봉이는 짝사랑에 마침표를 찍었다. 절대적이진 않지만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한 지 알 것이다. 짝사랑하는 이가 내게 하는 '좋은 친구'라는 표현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하물며 내가 최고라며 좋아해줘서 고맙다니. '그런데 왜! 나는 되지 않느냐'고 소리쳐 울고 싶은 상황이다. 그러나 칠봉이는 "나도"라며 돌아서서 혼자 조용히 가슴으로 울었다.
↑ 고아라(사진=강영국 기자) |
드라마 종영 후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의 인터뷰 자리에 선 고아라는 '응답하라 1994' 속 성나정의 모습 그대로였다. 밝고 꾸밈이 없다. 촬영 중 오른쪽 발목 인대 파열로 깁스를 했음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속사포 수다를 쏟아내는 그는 사랑스럽기만 했다. 며칠 째 이어져온 언론과의 인터뷰가 지겨울 법도 한데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느덧 무뚝뚝한 기자도 빠져든다. 배우는 배우다. 이렇게 어장관리를 당하나 싶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고아라(사진=강영국 기자) |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극 중 나정의 시점이 빠진 이유가 가장 크다. 항상 칠봉이와 쓰레기의 감정이 나올 뿐 나정의 마음이 누구를 향해 있는 지는 강조되지 않았다. 나정의 남편이 누가 될 지 몰라야 했기에 내 시점에서 이야기가 풀리면 안 됐다. 하지만 나정의 마음은 항상 쓰레기였다. 나정이가 어느 누구보다 짝사랑(쓰레기)를 해봤기 때문에 칠봉이의 마음을 잘 이해한 것이다.
- 신원호 PD는 처음부터 나정의 남편은 쓰레기였다고 나중에 밝혔다. 본인도 알고 있었나
▲ 촬영 내내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하고 답답했던 부분이다. 과연 내 첫사랑이 결실을 맺느냐 마느냐. 그렇게 많이 힘들게 하고 결별도 했는데 다시 (쓰레기와) 이어질 지 몰랐다. 쓰레기와 함께 지나온 사건 사고들이 깊은 상처로 남을 나정이 입장에서 더욱 그랬다. 쓰레기에게 난 동생이자 가족이었다. 칠봉이도 마찬가지겠지만 나정에게 그것만큼 처참한게 어디 있나. 나 역시 궁금증이 컸다.
- '어장관리녀'란 일부 평가가 서운하진 않나
▲ 개인적으로 칠봉이(유연석)와 나눈 이야기가 있다. 그가 '촬영하면서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 '나정이의 배려에 감동받았다' 했다. 나정이 '나 같은 나부랭이를 좋아해줘서 고맙다' 했던 장면은 칠봉이를 눈물나게 했고 고맙게 한 장면이다. 다만 나정이가 쓰레기 앞에서는 참 바보 같았다. (어장관리녀 아니냐) 그러한 평가는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시청자들이 원하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다음 시즌에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나와 (쓰레기에게) 복수하겠다. 하하. 작품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희생은 내가 할 수 있다.
- 쓰레기의 어떠한 면이 나정의 마음을 잡은 건가
▲ 칠봉이는 다정다감했고, 쓰레기는 대표적인 상남자 스타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극 중 쓰레기와 나정은 어렸을 때부터 친남매처럼 지낸 사이라는 점이다. 설레기도, 투닥투닥 싸우기도 했지만 첫사랑의 애틋함이 있기에 쓰레기를 택했을 터다.
- 극 중이 아닌 실제라면 고아라는
▲ 두 사람의 장점이 섞였으면 좋겠다.(웃음) 나 역시 첫사랑에 대한 애틋함은 남다를 것 같다. 내 첫사랑이 쓰레기나 칠봉이가 아닌, 삼천포(김성균)였다 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내가 연애를 한다고 해도 그럴 것 같다.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에 필(feel)이 와야 한다. 어떤 이에게 심장이 두근댔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세속적으로 이야기하면 의사와 메이저리거 특급 선수의 차이다
▲ 연봉 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돈 보다 사람이 먼저 아닌가.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나 역시 그러한 감정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싶다. 그러한 아픔과 사랑의 추억들이 인연을 이루는 요소가 아니겠나.
- 사랑에 대한 경험이 있나
▲ 있긴 있었다.(웃음) 짝사랑이었다. 그래서 나정이 캐릭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 같은 소속사 가수인 소녀시대 수영과 윤아가 열애 중이다
▲ 20대에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나도 운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기다리고 있다.(웃음)
↑ 고아라(사진=강영국 기자) |
▲ 2006년 성장 드라마 '반올림' 촬영 당시 마주치는 분마다 잘 몰라도 다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때 마침 신원호 감독님을 엘레베이터에서 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 미팅 때 감독님이 내게 '기억나느냐'며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 죄송하면서도 그때 저를 기억해주신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다. 나를 믿어 주신 점에 대해 특히 감사하다.
- '반올림' 이후 이렇다할 흥행작이 없었다(고아라는 지난 3일 방송된 '응답하라 1994 에필로그'에서 "옥림이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하니까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도 될까 생각했다. 그 벽을 깨고 싶었다"고 털어놓으며 눈물을 보였다)
▲ 내가 소위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이미지가 심한 지 솔직히 잘 몰랐다. 예쁜 화보 속에서나 나오는 그러한 이미지라고 하더라. 내가 그렇게까지 깍쟁이처럼 보였나 싶었다. 그런데 난 뼛속까지 시골 사람이다. 소똥 냄새 맡으며 자랐다. 청국장과 순대를 좋아해서 식당에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불편했다. 이제 조금 나정이의 편안한 모습으로 봐 주시는 것 같아 좋다. 요즘에는 오히려 더 먹으라고 밥도 많이 주신다. 행복하다.
- 촬영 전 체중을 불렸다던데
▲ 몸무게 5kg을 불렸다. 감독님의 미션이었다. 대본을 받아보고 선머슴아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헤어스타일도 바꿨다. 실제로 미용실에서 쓰는 가위가 아닌 1994년 방식인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층층이 내서 잘랐다. 그 시절에는 머리카락에 층을 칠때 면도칼로 했어야 한다고 하더라. 1990년대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꼼꼼히 준비했다. 그러한 부분도 재미 있었다.
- 다음에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 이제 시작이다. 뚜렷하게 무엇을 해봤다는 것도 딱히 없다. 다 해보고 싶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헤쳐 나가면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믿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fac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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