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뮤지컬 ‘위키드(WICKED)’가 지난 11월 22일 첫 공연 이후 연일 대박 행진이다. 100여년간 사랑 받은 고전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으며 궁극의 ‘반전’을 보여준 ‘위키드’. 이 작품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한, 묵살된 ‘다양성’에 대해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
박혜나(이하 ‘박’) : 아직도 꿈 속에서 살고 있는, 초록마녀 엘파바 박혜나입니다.
김보경(이하 ‘김’) : 청승? 비련? 그간의 어두운 수식어를 벗고 본연의 유쾌함을 되찾은, 글린다 김보경입니다~
하하! 딱 떨어지는 소개네요! 두 분은 이번 무대로 처음 만나셨죠?
박, 김 : 네
박 : 전 오래전에 공연을 통해 (보경이를) 처음 봤는데…
김 : (눈치를 살피며)근데 뭐? 뭐! 말해 솔직하게~
박 : 아, 기다려봐~(웃음을 겨우 참고) 체구가 작은 친구임에도 불구, 극을 끌고 가는 카리스마는 굉장히 묵직했어요. 저와 동갑인데 연기가 깊이가 있어 인상에 남았죠.
보경씨는요?
김: 저는… 솔직히 혜나 공연을 한 번도 못 봤어요.(힐끔) 오디션 당시에도, 또 이후에도 ‘엘파바’는 누가될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옥주현씨와 박혜나라는 친구가 뽑혔다는 거예요. 박혜나? 처음 듣는 배우인데? 게다가 나랑 동갑이라고? 10년간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친구는 처음 만났기 때문에 일단 반가웠어요. ‘얼마나 잘하는 배우이길래…’하는 호기심도 물론 있었죠.
실제 노래를 들어보니 느낌이 어땠나요?
김 : 정말 깜~짝 놀랐어요!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달까? ‘아, 앞으로 정말 큰 배우가 될 친구구나’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혜나씨는, 스타 배우들 사이에서 부담감이나 중압감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옥주현씨와 더블 캐스팅된 것에 대해 부담감이 없냐고 물으시는데, 제가 만약 그 분을 이기려고 하거나 막 경쟁심을 느낀다면 그랬겠죠. 근데 사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더 컸거든요. 나는 나만의 엘파바, 그분은 그분만의 색깔이 있는 거니까. 오히려 좋은 동료를 만나 든든하고 감사했어요.
김 : 연습량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힘들어 죽겠는데 경쟁심이라니! 그런 걸 느낄 여유조차 없었죠.
박 : 맞아요. (김보경을 향해) 우리 진짜 제대로 차 한 잔 마시지도 못하지 않았냐?
김 : 무대에서 만나 무대에서 헤어질 때가 대부분이었지!
막상 별로 개인적인 시간이 없었는데도 정말 친해 보이는데요?
박 : ‘위키드’는 장면 전환은 빠르고 의상은 많고, 또 화려해요. 배우들 간 지켜야 할 약속도 많고 정말 힘든 공연이죠. 그런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7주! 게다가 더블 캐스팅이라 연습시간이 부족해 정말 정신없이 보냈어요. 프로덕션 마다 요구들도 많아 배우들은 이 모든 걸 수용하느라 모두가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었으니까요.
보경씨는 특별히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김 : 사실 그간 너무 슬픈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에 이번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은근히 컸어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이전 작품의 감정에 젖어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거든요. 갑자기 이렇게 밝고 명랑한 역할을 하려니 좀 어색하더라고요. 분명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있는데 그게 실현되기까지, 남들에게 인정받기까지 어떤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스스로를 깨는 용기? 계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박 :정말 그랬어? 야~ 넌 정말 김프로다. 어떻게 그걸 감췄니? 전혀 눈치 못 챘는데!
두 분이 뭔가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같은 배우로서 배우고 싶은 점은 없었나요?
박 : (단 1초의 망설임 없이)보경이의 열정이요!
김 : 내가?
박 : 보경이는 자신의 배역을 정말 너~무 사랑해요. 모든 배우가 그렇지만 보경이의 열정은 그 주변으로까지 전해질 정도죠. 연습 한 씬 한 씬도 대충할 수 없게 하는 그런 강한 힘이 있어요. 어떤 날은 고도의 연습량에 힘이 빠지기도 하는데 이 친구를 만나면 저절로 또다시 온힘을 다해 노래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돼요. 저 작은 체구에서 자신의 모든 걸 매순간 내뿜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배움이 되고, 자극이 되죠.
김 : 글쎄요. 오히려 저는 혜나를 통해 마음을 다잡았는대요? 우리 둘 다 막내인데 혜나는 참 생각이 깊어요. 뭐랄까. 이 작업을 하다보면 분명 흔들리는 순간이 오기마련인데 혜나는 전혀 휘둘림이 없어요. 강인한 정체성을 지닌? 굳은 심지가 있어요. 그런 점은 정말 ‘엘파바’랑 비슷하죠. 대게 배우들은 감정이 아주 예민해서 주변의 이야기에 흔들릴 수 있거든요. 이 친구는 그런 게 없어요.
박 : 내가 버티기의 달인이야~
김 : (어깨를 툭 치며) 그러니까~ 저야말로 혜나를 통해 마음을 다잡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두 분 다 캐릭터에 정말 푹 빠져 계신 것 같아요. 캐릭터 자랑 좀 해주세요
김 :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실제로도 자꾸 닮아가는 것 같아요. ‘글린다’를 하면서 그 어떤 때보다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애교? 선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서 저를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에요.
김 : ‘글린다’는 의상부터가 ‘러블리’ 그자체인데, 특히 ‘퍼퓰러’라는 장면에서는 ‘글린다’의 매력을 200% 확인하실 수 있어요.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장면인데, 대사도 많고 워낙 빠른데다 율동까지 있어요. 노래도 곁들여야 하고. 처음엔 가장 부담스럽지만 익숙해질수록 가장 욕심이 나는 장면이에요.
박 : 보경이가 사실 발레를 참 잘하는데 이 장면에서는 억지로 못하는 척 하느라 고생을 좀 했죠.
김 : 그래서 ‘괴물 손’ 내가 아이디어 냈자나~
박 : 아, 그거 진짜 웃겼어~
괴물손이요?
김 : 궁금하면 꼭 공연으로 확인하세요!
하핫! '엘파바'는 어떤 점이 매력적이던가요?
박 : '엘파바'는 정말 정의로운 친구에요. 세상을 살다보면 옳은 게 뭔지 알지만, 자신의 상황에 맞게 억지로 합리화시키잖아요. ‘엘파바’는 자신이 피해를 보더라도 옳은 일이라면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가요. 결과가 항상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멋진 여자죠! 진한 초록색 분장이 오히려 예쁘게 보일 정도로, ‘엘파바’는 닮고 싶은 캐릭터에요.
김 : 맞아요! 게다가 ‘엘파바’의 노래를 듣다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나고 뭉클한 장면들이 참 많아요. 함께 연기하면서도 얼마나 슬픈지!
박 : ‘글린다’와 ‘엘파바’가 함께하는 장면들이 워낙 많아서 서로 울음을 참고 감정 몰입에 도움을 주려고 항상 신호를 보내요. 노래 안에서 집중해서 하다보니까 감정 조절이 사실 쉽지 않거든요. 이런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김 : 공연하는 우리뿐만 아니라 선배들의 애정도 굉장해요. 혜나의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을 때면 늘 무대 뒤에서 혜나를 지켜보는 선배들이 계세요. 때때로 눈물을 훌쩍이시기도 하시고.
박 : (깜짝 놀라며) 정말?
김 : 응! 영주선배는 꼭 너 무대 들어갈 때까지 끝까지 지켜보시곤 해~ 매번!
박 : .... .....
이러다 두 분 인터뷰하시다 우시겠어요~ 분위기 전환 좀 해야겠네요. 둘이 그렇게 친한 친구인데 사랑 앞에서는 양보가 없던대요?
김, 박 : 깔깔깔!
박 : ‘글린다’의 약혼자이긴 하지만, 사실 ‘엘파바’도 오래전부터 그를 사랑했으니까. 사실 남자가 문제에요! 두 여자에게 양다리나 하고.
↑ (사진=설앤커퍼니) |
박 : 어렸을 땐, 무조건 사랑 보단 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남자 하나 때문에 좋은 관계를 잃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남자, 여자가 아닌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사람, 어떤 관계가 더 중요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진짜 우정이라면 진심어린 사랑도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김 : 맞아요. 상대가 어떤 사랑이냐, 어떤 우정이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글린다'와 '엘파바' 정도의 사이라면…양보할 수도?
박 : 그렇지만 한 20년 후에 봐야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냐?
김 : 맞아~하하하!
정말 죽이 잘 맞네요! 어머 시간이 벌써 다 지나갔네요! ‘위키드’는 두 분에게 각각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박: 끝을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그냥 지금 제 이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큰 욕심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고, 그 꿈에 ‘위키드’가 정말 큰 영향을 준 작품이겠죠! ‘위키드’를 만나 그저 행복할 따름입니다.
김 : 그냥 ‘행복’, ‘감사’, ‘위안’ 이런 단어 밖에 떠오르질 않네요. 많은 분들이 ‘위키드’를 통해 저를 새롭게 봤다고 말씀해주시는 걸 보면, 그간 국한됐던 저의 이미지를 한 단계 깨버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드디어 비련, 청승 벗었습니다!
박, 김 :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연장에서 봐요~
지금까지 김보경 박혜나씨와의 인터뷰 현장이었습니다. 저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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