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은경이야말로 진짜 ‘수상한 그녀’다

시쳇말로 ‘연구대상’이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맞은 이 여배우. 누가봐도 ‘귀요미’ 상인데, 작품만 하면 캐릭터에 완벽 빙의된다. 이번엔 70대 욕쟁이 할머니다.
22일 개봉한 ‘수상한 그녀’(황동혁 감독)에서 심은경은 몸은 20대, 마음은 70대인 ‘오두리’ 역을 맡았다. 가히 ‘심은경 원맨쇼’라 할 만하다. 러닝타임의 80% 이상에 등장해 관객을 들었다놨다 한다.
입에 모터라도 달린 듯 쏟아내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는 큰 웃음을 준다. 웃음만 주는 게 아니다. 무공해 노래실력과 순박한 멜로라인은 감동과 눈물마저 안긴다.
이 영화는 휴먼 코미디물을 표방했다. 스무 살 꽃처녀(심은경)의 몸으로 돌아간 욕쟁이 칠순 할매(나문희)가 난생 처음 누리게 된 빛나는 전성기를 그렸다. 설 연휴에 안성맞춤인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아들자랑이 유일한 낙인 ‘오말순’ 나문희는 청춘 사진관에 들렀다 몸만 20대인 심은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녀의 이름은 ‘오두리’. 오드리 햅번을 동경한 나머지 지은 이름이다. 헤어 스타일도 햅번을 따라한다.
20대 ‘오두리’와 70대 ‘오말순’의 씽크로율은 기대 이상이다. 말투, 웃음소리, 걸음걸이까지 빼닮았다. 어떻게 연구했을까.
“선생님 촬영 영상을 매일 받아서 연습했어요. 웃음소리가 가장 따라하기 어렵긴 했어요. 걸음걸이도 연구했는데 약간 팔자걸음 모양이더라고요. 대본 연습하면서 조언도 해주셨는데, 좀 더 익살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갔으면 하셨어요. 그 부분을 명심하고 연기했지요.”
‘오두리’는 심은경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다. ‘대체불가’ 캐릭터다. 대선배 나문희도 “우리 심은경이 아니었음 어쩔뻔 했어” 혀를 찰 정도였다.
그런데, 출연 결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욕심은 났지만, 부담감은 컸다”고 기억했다. ‘출연 고사’로 이어질 뻔 했다. “어설프게 할머니 흉내를냈다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심은경의 마음을 이끈 건 엔딩신이었다. 극중 아들인 성동일과 아름다운 대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밀려왔다.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하게 됐어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눈물이 났지만, 촬영할 땐 주체가 안되더라고요. 입을 틀어막고 울 정도여서 NG가 여러 번 났어요. 감독님은 덤덤하게 대사하길 바라셨어요.”

이번 영화의 웃음 코드 중 하나는 전라도 사투리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심은경의 능청스런 전라도 사투리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남자는 말여,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믄(되야)” “하여튼 사내놈들은 아랫도리가 문제여. 한 토막도 안되는 것 때문에 뭣허러 인생을 망치나 몰러” 같은 대사들은 배꼽을 잡게 한다.
“‘아따!’ ‘아이고~’ 같은 추임새가 포인트였어요. ‘써니’ 찍으면서 이한위 선배님께 사투리 레슨을 받았는데, 그거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억양을 절제하고 톤을 낮췄어요. 차라리 경상도 사투리 배우기가 더 수월하단 생각도 했어요. 전라도 사투리는 서울말도 아닌 게 충청도도 아니고 미묘한 차이가 있거든요. 리듬을 반복하면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죠.”
‘오두리’ 심은경은 극중 ‘반지하 밴드’ 보컬로 영입돼 못다 펼친 꿈을 이룬다. ‘나성에 가면’ ‘하얀나비’ 빗물‘ 등을 대역 없이 불렀다. 처음 심은경의 노래실력을 테스트 한 감독은 난감해했다. 그러더니 “대역을 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오두리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어요. 보컬 트레이너에게 독하게 배웠죠. 가창력이나 음역대에 신경 쓰기보단 마음을 전하는 감성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뒀어요. 할머니 연기 다음으로 가장 신경 쓴 부분이었는데 괜찮았나요?(웃음)”

‘써니’ 이후 “더 큰 배우가 되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던 심은경. 2년간의 유학생활은 그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피츠버그 사립학교에서 홀로 6개월을 보낸 후 큰 도시 뉴욕으로 날아갔다. 뉴욕프로페셔널 칠드런 스쿨에 들어가 배우 스칼릿 조핸슨, 첼리스트 요요마의 자취를 더듬었다. 해외 각국의 친구도 사귀었다. 중국 팬들은 한국 유명배우인 걸 알고 신기해하기도 했단다.
“비로소 심은경이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시간이었죠. 연기만 하다 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처음으로 남들보다 늦은 사춘기를 겪은 셈이죠.”
이번 영화는 그녀에게 새삼 많은 걸 일깨워줬다. “나이듦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지금도 나이를 먹고 있는데,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 한 느낌이 들었어요.”
먼 미래를 생각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수상한 그녀’를 기점으로 활발한 활동이 예고된다. 20대 여배우 기근현상에 시달리는 스크린에서의 활약은 더욱 기대된다.
새출발을 위해 소속사도 옮겼다. “‘광해’ 땐 너무 어려워서 말 한마디 못 건넨” 이병헌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이병헌 선배님의 느낌을 닮고 싶다”는 심은경은 “연출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지만, “일상에선 그저 평범하고 헐렁한 구석이 많은 20대”라며 머리를 긁적이던 심은경. “연기를 안했다면 개그우먼 시험을 봤을 것”이라면서도 “배우라면 자신을 완벽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녀야말로 진짜 ‘수상한 그녀’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유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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