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티즌과 음악 전문가들 사이의 화두는 가인과 걸그룹 스피카다. 천편일률적인 댄스 뮤직에서 벗어난 신선한 멜로디와 이들의 차별화된 퍼포먼스가 눈과 귀를 사로잡은 덕이다.
8일 현재 가인의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은 멜론을 비롯한 주요 음원 차트 '톱10'에 들며 인기몰이 중이다. 스피카의 '유 돈트 러브 미(You Don't love me)'는 9일 방송되는 SBS '인기가요' 1위 후보까지 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은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곡의 멜로디를 이루는 뼈대가 사실상 흡사하다는 주장이다.
네티즌은 가인의 '진실 혹은 대담'이 팝스타 로빈 시크(Robin Thicke)의 '블러드 라인(Blurred Lines)'을, 스피카의 '유 돈트 러브 미'가 밴드 클래어리 브라운 앤 더 뱅잉 랙켓츠(Clairy Browne & The Bangin' Rackettes)의 '러브 레터(Love Letter)'와 비슷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가인과 스피카 측은 네티즌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표절은 말도 안 된다"고 난색을 표했다. 로빈 시크의 곡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수주간 1위를 차지한 곡이다. 클래어리 브라운 앤 더 뱅잉 랙켓츠도 국내 팬들에게 친숙하지는 않으나 CF 배경음악에 쓰일 정도로 익숙하다. 금방 탄로 날 음악을 표절한다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가 몇몇 작곡가와 평론가에게 문의한 결과, 표절 의혹이라기 보다 '교묘한 베끼기'로 해석하는 이가 많았다. 원작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표절'을 운운할 수 없으나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하다는 것이다.
흑인음악전문가이자 대중음악평론가인 강일권 씨는 두 곡을 두고 "구린 레퍼런스 관행이 낳은 부끄러운 망작"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이어 "전자는 음원 차트 1위, 후자는 음악 방송 1위 후보. 이것이 케이팝(K-POP)의 현실이다"고 한탄했다
그는 "1960, 70년대 흑인 음악에 기반을 둔 곡들은 기본적으로 리듬이나 멜로디 패턴, 악기 구성이 비슷한 경우가 많긴 하다"면서도 "레퍼런스(참고 음악)에 대한 우리나라 가요계의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표절에 관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본 따기라면 괜찮다'는 안일함이 작곡가들 사이에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이상무 음악평론가 역시 개인 블로그를 통해 "스피카 앞에서는 앞으로 대한민국 걸그룹 누구도 '섹시'라는 단어는 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울 수준이다. 이효리의 프로듀싱 덕이 크다"고 칭찬하면서도 '이 부분'만 클리어(Clear) 하다면…"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글 말미에 클래어리 브라운 앤 더 뱅잉 랙켓츠의 '러브 레터' 뮤직비디오를 게재했다.
흔히 작곡가들은 "이미 음악계에 새롭게 나올 코드는 없다"고들 한다. 실제로 보이즈 투멘의 히트곡 '엔드 오브 더 로드'나 브라이언 맥나잇의 '원 라스트 크라이' 등의 코드와 흡사한 국내 가요가 꽤나 존재한다. 지난해 11월 MBC '무한도전-자유로 가요제'에서 박명수와 짝을 이뤄 큰 인기를 끈 프라이머리의 '아가씨(I GOT C)' 역시 네덜란드 출신 가수 카로 에메랄드(Caro Emerald)의 곡을 표절했다는 공방 속에 원만한 합의점을 도출했다.
결국 작곡가의 양심 문제다. 표절 논란이 있을 때마다 법적으로 시원하게 해결되기 어렵다. '장르의 유사성에 따른 결과'라는 그때 그때 '해명'도 그래서 통한다.
성시권 대중음악평론가는 "가요계가 특정 히트 작곡가들에게 의존하는 세태도 문제이자 '검증된 히트곡을 레퍼런스 삼아 재생산 해달라' 바라는 제작자들의 행태도 부작용의 한 원인일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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