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무용을 하시던 분이 제 대신 캐스팅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분이 임신하셔서 하차하게 됐죠. 감독님은 영화제에서 만난 인연이 있었는데 '혹시 출연 가능하니?'는 연락을 받게 됐고, 참여하게 됐어요."
대무당 김금화(83)씨의 삶을 독특한 형식으로 담은 영화 '만신'(6일 개봉)의 배우 류현경(31)은 이처럼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영화만큼 독특하지는 않은 캐스팅 비화지만, 무당으로서 운명적인 삶을 살아온 김씨의 이야기인 것처럼 류현경에게도 운명적으로 제의가 들어온 작품 같이 느껴진다.
영화제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인연도 있었지만 박찬경 감독이 2년 여를 김씨를 따라다니며 찍어놓은 다큐멘터리 분량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는 류현경. 류현경의 캐스팅 덕에 박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에 드라마적인 요소도 가미했다.
"박찬경 감독님 영화 중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라는 작품이 있어요. 거기 한예리씨가 나와요. 연기인데 연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그 분위기가 재미있을 것 같았고, 다큐멘터리 속에서 드라마를 한다는 게 흥미로웠죠."(웃음)
류현경은 김씨에게 며칠 동안 굿을 배웠다. 하지만 어려웠다. 몇십 년을 인간문화재(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지정)였던 이의 능력과 솜씨 등을 며칠 만에 소화할 순 없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시는데 따라 하기 힘들더라고요. 어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장면들은 좀 부족한 것 같지만 내림굿 장면은 실제 신내림 받는 분을 보고, 물어보기도 하면서 했는데 잘 한 것 같아요. 물론 연기를 잘 했다기보다는 동작이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 호호호."
류현경은 "세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닮진 않았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하다"며 "동떨어진 느낌은 아닌 것 같다"고 봤다. "관객분들이 이질적인 느낌은 받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많은 신을 다른 배우들과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추억이었다. 선배 배우 문소리와 연기도 기분 좋아 보이고, 김새론을 향해서는 과거 생각이 많이 난 듯하다. 류현경도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새론이는 존재 자체만으로 빛나는 느낌이더라고요. 연기 안 하는 듯 자연스럽고 진중했어요. 전 어렸을 때 끼를 주체할 수 없었죠. 개구쟁이였어요. 헤헤헤. 전 주목을 못 받았는데 그래서 더 까불었던 것 같아요."
'만신'은 제작비 등의 문제로 3, 4년을 찍었다. 박찬경 감독은 2년 넘게 김금화를 따라다녔고 영상을 담아냈다. 1년에 한 장면씩 촬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가장 먼저 캐스팅된 류현경은 이런 드문드문한 촬영을 감내해야 했지만, 불편하기보다 흥미로웠다. 류현경은 특히 배우로서 마음가짐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만족해했다.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 만난 작품은 방송인 이경규가 제작한 '전국노래자랑'이다.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지만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예전에는 나만 생각하고 나만 행복하면 됐는데 이젠 바뀌었어요. '전국노래자랑'을 보는 사람이 좋은 마음, 좋은 생각들을 많이 가졌으면 했어요. 그때 홍보 인터뷰에서도 말했는데 미애라는 캐릭터가 누군가의 이모, 언니, 친구를 대신할 수 있는 캐릭터로 관객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거죠. 몰라주셨던 분도 있지만 그런 마음을 이해해준 분도 있어서 괜찮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