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깨지기 쉽다. 충격을 받으면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그 내면에서 어떤 상처와 아픔을 다 받아들이기에는 무리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14살 천지(김향기)도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엄마 현숙(김희애)과 언니 만지(고아성)를 배려하는 어른스러운 아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겪은 일련의 사건과 상황들은 어린아이에게 상처와 아픔을 줬고,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했다.
아이들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천지의 경우가 그랬다. 같은 반 화연(김유정)은 겉으로 보기에 천지의 친구지만 겉으로만 위하는 척했을 뿐이다. "친구 하자"며 웃는 얼굴로 천지를 괴롭히고, 일부러 시간도 다르게 적어 생일 초대장을 보냈다. 그리고선 다른 아이들과 깔깔대며 재미있어했다.
최후의 선택을 하기 전 천지는 '살려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가족은 물론 그를 괴롭힌 이들에게도. '가해자들'은 당연히 그 경고 메시지를 알지 못했고, 가족 역시 SOS 신호를 눈치 못 챈 건 마찬가지다.
가족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못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겠지만, 현실의 삶을 뒤돌아보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며 바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닌 가정도 있지만) 말 한마디 살갑게 나누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엄마와 언니는 딸자식, 동생을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현숙의 가족 이야기는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또 너무나 현실적이다. 극단적 상황이 터져야만 잘못된 게 무엇인지 살펴보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다.
극 중 천지는 뜨개질로 그 상처와 아픔 혹은, 화를 꾹꾹 눌러 담았었다. 그 뜨개질 실 안에 종이를 넣어 비밀도 숨겨 놓았다. 엄마와 만지는 천지가 죽은 이유를 하나씩 알게 되고, 되짚어 나간다. 드러나는 진실들이 모이고 모이니 너무나 잔혹하다.
물론 감정을 터트리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인 '우아한 거짓말'은 관객의 동의는 꽤 얻을 것 같다.
학교 폭력, 왕따 문제는 심각하다. 요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선생님들이 알려주는 게 '왕따'라고 한다. 친구들을 따돌리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학교라니…. 피폐해진 것 같은 현실, 이런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 들여야 해 답답하다.
영화 속에서 얘기하는 1차 가해자는 분명 화연이다. 하지만 천지를 감싸 안지 못한 반 친구들도 가해자다. 가해자라는 말을 쓰기 조심스럽긴 하지만, 가족 역시 천지를 죽음의 문턱으로 밀었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당신도 가해자는 아니냐고. 그렇다고 가해자를 밀어 낭떠러지에 세우지도 않는다.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하지만 분명히 학교 폭력과 왕따는 범죄라는 사실을 영화 전반을 통해 각인시킨다.
하나 더. 이 감독의 전작 '완득이'에서 호흡을 맞춰본 유아인의 활용법도 탁월했다. 이 감독은 무거운 소재와 주제의 영화이기 때문에 어두울 수도 있는 상황을 유아인을 등장시켜 웃음을 준다. 또 실마리를 푸는 하나의 열쇠로도 사용한 점도 센스 넘친다. 김려령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117분. 12세 관람가.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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