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언진은 본래 역관출신이다. 조선시대 역관들은 대부분 중인 집안의 가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언진의 집안 역시 대대로 역관 노릇을 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그도 사역원에서 치르는 역과에 합격하고 자연스럽게 역관이 되었는데 왜(倭) 통사, 즉 일본어 통역으로 일했다. 하지만, 남달리 총명했던 이언진은 기억력이 뛰어나서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고, 격발(擊鉢), 즉 밥그릇을 한번 때리는 동안 시를 완성할 정도로 순발력이 뛰어났다. 글씨도 매우 단정해서 마치 활자로 인쇄한 것 같았는데 틀린 곳을 찾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천재라는 뜻이다.
왜(倭) 통사였던 그는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을 때 천재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통신사가 오면 벌떼같이 몰려와서 시를 요구했는데 수백, 혹은 수천 건에 이르렀다. 통신사와 호송하던 관리들이 붓을 들고 응하려고 해도 서로 먼저 써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곤경을 겪기 일쑤였다. 이언진이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글을 잘 쓴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무려 오백 개나 되는 부채를 내밀면서 시를 써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이언진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그 자리에서 먹을 갈면서 시를 읊조리고 붓을 들어서 부채에 적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오백 개의 부채에 시를 쓰자 일본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천재를 시험해볼 요량이었는지 또다시 부채 오백 개를 가지고 와서는 조금 전 썼던 오백 개의 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새로 쓰는 것도 아니고 같은 시를 다시 써달라고 했으니 어쩌면 골탕을 먹이려는 속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언진은 빙그레 웃더니 붓을 들고 아까 썼던 시들을 중얼거리면서 써나갔다. 부채의 시를 맞춰보던 일본인들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은 것을 보고는 대경 질색했다. 혀를 내두른 일본인들이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 일본인 미야세 류몬이 그린 이언진의 초상화. |
“이런 것들은 남겨두어도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 누가 나 이언진을 기억하겠는가?”
이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급하게 불을 껐지만, 책 대부분이 재로 변한 다음이었다. 아내가 불을 끄고 책들을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언진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간직한 몇 개의 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비로소 세상이 그의 재능에 관심을 기울였다.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건너가 붓 한 자루로 일본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했던 천재 시인 이언진은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의 시가 적힌 책을 불길 속에 던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늘을 꿰뚫는 비범한 재능조차 넘어가지 못하는 신분의 굴레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만약 조선이 그에게 마음껏 시를 쓸 수 있게 해주었다면 우리는 이언진이라는 위대한 시인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명섭(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