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성기는 젊은 시절 상방궁인, 즉 활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아마도 집안 대대로 이어져 온 가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는 없었던 재주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거문고 연주가 탁월했던 것이다. 활을 만드는 장인이 제대로 거문고를 배웠을 리 만무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과 열정의 소유자였다. 일하는 틈틈이 거문고를 배우던 김성기는 장안에서 이름난 거문고 선생인 왕세기를 찾아간다. 하지만, 왕세기는 김성기의 간절한 청을 무시한다.
“활을 만들던 녀석이 어찌 거문고를 배운단 말이냐. 썩 물러가라!”
그렇지만 김성기 역시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집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왕세기의 거문고 연주 소리를 듣고 따라서 연습한 것이다. 청음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오랜 연습을 해야만 할 수 있지만, 천부적인 자질을 지니고 있던 그는 금방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세기에게 몰래 듣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만다. 김성기는 펄펄 뛰는 왕세기 앞에서 그동안 몰래 들었던 것들을 연주한다. 그의 실력과 열정에 감탄한 왕세기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왕세기에게 제대로 배우면서 그의 실력은 더더욱 늘어났고, 얼마 후에는 한양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활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거문고 연주에만 전념하게 되는데 비파와 퉁소 연주도 탁월했으며 직접 만든 연주곡은 한양에서 금방 유행되었다.
당연히 양반 사대부들의 잔치에는 빠지지 않고 초대를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시조창을 하던 김천택과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청구영언이라는 시조집을 쓴 김천택은 그보다 한참 어린 나이였지만 예술가에게서 나이란 장식에 불과할 뿐이었다. 김성기와 김천택은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고 나이를 잊은 친구로 지내기로 한다. 자연스럽게 김성기의 거문고 연주에 맞춰서 김천택이 시조창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에 동료가 모여든다. 김천택은 이렇게 모인 동료를 모아서 가단, 일종의 밴드를 구성했다. 중국의 시인 이백의 시에 나오는 경정산의 이름을 따서 경정산가단이라고 불린 이 밴드는 두 사람 외에 김수장, 김유기, 문수빈 등 당대 최고의 가객들이 모였다. 함께 모인 이들은 거문고를 비롯한 악기를 연주하고 시조창을 하면서 실력을 뽐내고 지식을 교류했다. 그렇게 늙어가던 그는 뜻밖의 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 사진=경기도립국악단 공연 장면 / 경기도립국악단 홈페이지 |
“가서 목호룡에게 전하거라. 내 나이 이제 칠십인데 어찌 너를 두려워하겠느냐? 목호룡이 고변을 잘한다 하니 나도 고변을 해서 죽여보아라.”
깜짝 놀란 목호룡의 종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세상일에 염증을 느낀 그는 한양 밖으로 나가서 작은 초가집을 짓고 낚시를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남들은 그를 하찮은 거문고 연주자로 봤지만, 그는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자리에 가기를 거부하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런 자부심과 실력이 오늘날까지 그를 기억하게 한 원동력일지 모른다.
정명섭(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