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다들 열심히 연기한다. 잘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누구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내게 기회가 온 게 '럭키한 일'이라는 걸 안다. 주목을 받게 됐다. 물론 결국은 그 모든 게 허상이라는 걸 금방 알겠더라. '골든타임'의 최인혁 역은 어떤 배우가 했어도 잘했을 것이다."
이성민은 주목만 덜 받았을 뿐이지 사실 이전에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정재영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방황하는 칼날'(10일 개봉)은 지난 2010년 엄정화 주연의 영화 '베스트셀러'의 이정호 감독이 이성민에게 한 번 더 호흡을 맞춰보자고 제의한 작품이다.
'골든타임' 흥행으로 이성민을 택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감독은 '골든타임' 이전에 이미 이성민에게 출연을 제의했었다. 이성민은 "감독님이 낯간지러운 멘트를 날리면서 함께하자고 하더라. 저를 평소에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줘 "고마웠다"는 말도 했다. 감독 대부분의 러브콜이 그러할 텐데 이성민은 유독 쑥스러워했다. 경상도 남자라서 유독 그런 듯하다.
중학생 딸이 있는 이성민은 "출연하기 전까지는 딸과 이 영화 내용을 결합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촬영을 시작하며 상현 입장이 되더라. 내 딸이 이 상황의 상상력에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 감정이 싫었다. 연기하기 싫기도 했다"고 몰입했다.
물론 그는 형사 역을 맡은 자신보다 딸을 잃은 상현을 연기한 정재영이 더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현장에서 '수다쟁이'인 정재영은 이번에는 침묵했다. 이성민의 표현을 빌자면 정재영은 "묵언 수행"에 들어갔단다.
이성민이 꼽은 답답한 장면 하나. 상현이 딸의 신원을 확인하러 시체보관실에 들어가는, 초반 신이다. 이 외에도 몇몇 장면이 정재영과 이성민을 답답하게 했고, 두 사람은 그 잔인하고 안타까운 장면을 촬영하는 아역 배우를 걱정했다.
이성민은 "우리는 무척 걱정했는데 학생 배우가 워낙 해맑더라. 이건 단지 연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 다행스러웠다"고 안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또 시사회 때 자신의 뒷자리에서 안타까운 마음인지 계속 한숨을 쉬던 이를 언급하며 "나도 그분의 마음에 동의했다. 이 영화는 한숨을 불러오는 영화 같다"고 짚었다.
'방황하는 칼날'은 눈이 수북한 강원도에서 촬영했다. 춥기도 추웠겠지만 환경이 열악해 힘들기도 했을 것만 같다. 이성민은 "물리적 고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배우는 자기 연기가 잘 안 풀릴 때 더 고생"이라고 말했다.
연극활동을 시작으로 오래 연기를 하며 뒤늦게 빛을 봤다고 하자 그는 "주목을 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연기를 하다 보면 금방 지칠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도 그렇게 해왔다. 후배들에게 늘 해주는 조언이다. 그는 "마흔한 살이 되어서야 월세 걱정을 안 해 봤다"는 말을 덧붙였다. 불과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혼란스러웠다는 그지만 마음을 다잡고 연기하고 있다.
다양한 연기로 관객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성민. 그는 "가끔 내가 너무 자신이 없어서 들어온 캐릭터도 못 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무슨 역이든 완벽할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말일까.
그는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어떤 악역을 제의받았는데, 자신의 머릿속에 어떤 다른 배우가 이 역을 맡아 연기하는 게 생각이 나면 "연기하기 겁이 난다"는 것. "그런 부분에서 아직은 내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연기 욕심은 많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로도 곧 관객을 찾을 예정인 그는 "처음으로 합을 맞춰 연기했는데 묘한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액션을 향한 애정도 생겼다. "말타기를 처음 한 그에게 교관은 다음날 몸이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멀쩡했다. 오히려 말타기 후 자전거를 타고 50km를 달렸어도 문제없었다. 교관이 놀랄 정도였다고.
"액션은 몸에 직접 익혀 연기하는데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까? 묘한 감정이 생기더라. 액션도 드라마 찍듯 할 줄 알았는데 한 땀 한 땀 찍어서 놀라기도 했다. 땀 흘린 다음에 전해져 오는 쾌감이 좋았다.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몸 잘 못 쓰는 배우'의 한 가지 에피소드. 어렸을 때 지역 극단에서 생활하는데 탈춤을 배우다가 뛰쳐나왔다. 배우는 여러 가지 연기를 위해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탈춤, 발레, 마임 등등.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과거 "난 연기하러 왔는데 왜 탈춤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극단을 나왔다. 그를 따라 달려 나온 선배가 뺨을 세차게 때렸고, 정신을 차렸다. 다시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 선배가 없었으면 아마 그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성민은 연극을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고양과 안산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마르고 닳도록' 공연에도 나선다. 극단 차이무가 애국가 저작권료를 받아 챙기기 위해 마피아가 한국을 찾는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 차이무 소속인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그는 "연극은 내가 처음 했던 작업이고, 또 선배님들을 통해 나에 대한 재평가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며 "연극을 하면 꼭 집에 가는 그런 느낌이더라"고 웃었다. 연기를 향한 그의 사랑이 느껴졌다.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