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으로 좀비들이 세상에 늘어가고, 치료제 개발로 인간과 좀비 출신 치료자들이 공존하게 된다. 좀비 치료자들은 끔찍했던 자신들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매일 약을 먹으며 노예처럼 산다. 좀비 치료자들이 일하는 공장의 작업반장 여울(박기웅 분)은 늘 좀비들을 경멸한다. 그러나 여자 좀비 치료자 시와(남규리 분)는 그의 구박에도 늘 그를 따라다닌다. 그런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자 좀비 치료자 비루(이현웅 분). 비루는 시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렇게 짝사랑으로 시간을 보내던 비루는 자신을 경멸하는 여울을 도와 희생하게 된다. 오직 짝사랑하는 시와, 그녀를 위해서. / ‘신촌좀비만화-너를 봤어’
[MBN스타 여수정 기자]
↑ 사진=이현지 기자 |
이현웅은 푸근하고 낯익지만 어느 작품에 출연했는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그는 한 포털사이트 프로필 속 표기된 뮤지컬배우가 아닌 소극장에서 연극을 오래한 연극배우다. 물론 지금은 프로필에 연극배우와 영화배우가 동시에 표기된 상태. 그가 낯익은 이유는 최근 다양한 광고를 통해 대중을 만나고 있고 거기에 ‘신촌좀비만화’까지 합세해 그의 인지도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너를 봤어’에서 여자 좀비 치료사 시와(남규리 분)를 짝사랑하는 남자 좀비 치료사 비루 역을 맡았다. “으으으”라고 대사가 아닌 소리를 지르거나 시와를 향해 손가락 모양의 빵, 눈알 젤리 등을 건네며 다소곳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 사랑하는 시와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 덕분에 영화 속 이현웅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주인공 박기웅과 남규리보다 빛나기까지 해 궁금하기까지 하다.
“사실 난 ‘너를 봤어’ 완성 본을 볼 수 있는 기술시사를 안 갔다. 큰 역할을 맡은 첫 영화라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기다렸다가 전주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연출을 맡은 한지승 감독님은 정말 좋은 분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한 번 이를 느꼈다. 3D는 물론, 배우와 촬영 등 여러 가지를 보이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더라. 식구들을 정말 많이 배려했기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감성좀비로 불리고 있는데 난 좀비영화를 좋아하고 비루 역 표현을 위해 좀비에 대해 깊이 파봤다. (웃음) 좀비처럼 소리도 질러보고 많이 노력하다보니 목이 갈라지더라. 연습해간 부분과 현장에서의 분위기의 조율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잘해준다. 그래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현웅의 연습과 한지승 감독의 디렉션으로 탄생한 감성 좀비 비루. 그래서인지 극중 여울(박기웅 분), 시와와 달리 비루는 어딘지 모르게 더 오싹하고 무섭다. 그러나 짝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하며 희생하고 헌신하기에 마치 진짜로 좀비가 있었다면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인물이다. 그동안 한국영화에 좀비 소재가 드문 것도 사실이고 ‘너를 봤어’처럼 대거의 좀비들이 등장하는 작품도 없었다. 카메오라면 모를까.
“‘웜 바디스’와 비슷하다 생각해 이 작품에서 캐릭터적인 힌트를 얻곤 했다. 좀비 동작은 현대무용이 전공인 안무선생님에게 배웠고, 표정은 스스로 거울을 보고 연습하거나 현장에서 감독님의 제안을 참고했다. 또한 당시 비루와 내가 처한 상황이 짝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닮은 부분이 있어 몰입도도 딱 이었다. (웃음) 내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열연했다. 아팠던 기억은 물론 연기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등. 정말 울분을 토한다는 생각으로 진심을 다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이현웅의 연기 핵심론(?)에 따르면 배우는 자신의 경험을 연기할 때 끄집어내는 인물이다. 영화 속 그의 열연을 되짚어보고 결론을 내리자면 이현웅은 잘 벗었다. 이에 그 역시 동의하며 “난 그냥 홀라당 깐 것 같다”고 쿨하게 밝혔다.
솔직하고 쿨한 이배우. 정말이지 왜 이제야 빛을 발하는지 싶다. 이현웅은 이번 작품이 스크린 데뷔작이기에 분명 멋진 역으로 출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좀비. 좀비를 다룬 영화도 없고 아무에게나 좀비 역이 가는 게 아니기에 특별하고 신선하지만 일말의 아쉬움이 있을 법도 하다.
“난 비루 역을 연기한 게 더 멋있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의미가 더 깊다. 좀비는 죽지 않은 괴물 아니냐. 그래서 나도 첫 영화에서 좀비 역을 맡았으니까 앞으로 좀비처럼 꾸준히 갈 수 있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난 잘생기고 멋진 배우보다는 대중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한국에 좀비 영화도 없기에 좀비 역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배우들이 많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특권을 누린 셈이자 정말 행운아다.”
결론적으로 이현웅은 오는 행운(좀비 역)을 잘 잡았고 그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잘 표현했다. 덕분에 대중들은 한국형 감성좀비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그것도 3D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좀비 연기는 한국에서 가장 최고예요”라는 ‘특급칭찬’에 “에이. 아니에요. 그러나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며 스스로도 조금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와 드라마가 아닌 꾸준한 극단생활로 연기에 깊이를 채우고 자신에게 조금은 확신이 섰을 때 대중 앞에 나온 이현웅. 11년의 연기 인생이 증명하듯 그의 연기는 충분히 깊이 있고 알차다. ‘신촌좀비만화’로 존재감을 알린 그에게 이젠 대중의 무한 관심이 쏠아질 차례다.
“20대 때 무작정 덤벼들지 않은 건 겸손함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사고를 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연기에 대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나섰다가는 깨질게 뻔했다. 연기를 못하냐고 혼난 적도 있다. 때문에 스스로 연극에만 몰입했다. 연극을 하고 독립영화, 단편영화도 찍으니 이젠 카메라가 무섭지도 않고 안에서 어느 정도 놀 수 있게 됐다. 배역에 대한 갈망과 한이 있기에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 특히 한 역할이 내 것이 된다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이 있다. 자신 만의 고유색을 가지고 그 색이 강한 배우이고 싶다. 저 역할은 저 배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배우 말이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