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분명 뇌리에 박히긴 했는데 무작정 강렬하다기 보단 곱씹을수록 선명해지는 쓰라림이다. 첫 눈에 반한 운명 같은 사랑이 아니다. 자꾸만 미련이 남고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게, 오히려 예기치 않은 이별에 가깝다. 찰나의 실수로 떠난 보낸,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첫 이별의 아픔,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를 감상한 느낌이다.
뮤지컬 ‘블라드 브라더스’의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윌리 러셀은 애초에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이 공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 뮤지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음의 아리아도, 심장을 마구 뛰게 하는 댄서들의 구둣발 소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다. 배우들의 연기, 극적 구성 등에서 크게 흠잡을 구석은 없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
이것이 가능한 건 ‘블러드 브라더스’에는 여느 뮤지컬에서 쉽사리 만날 수 없는 인간 본성을 충격하는 진정성과 감동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1960년대 경제 공황 시기의 영국 리버풀을 배경으로 한 배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극복할 수 없는 가난과 인간적인 욕망 아래 휘둘려 버린 어느 쌍둥이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다.
곳곳에서는 “손가락을 꼬고 하나부터 열을 세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탁자 위에 신발을 두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자루 귀신이 잡아갈지도 몰라” 등 각종 미신이 등장하는 데, 이는 곧 비극의 강력한 복선이 된다.
손가락을 꼬기만 하면, 모든 게 장난이 된다는 이들의 놀이는 결코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 순간의 선택조차도 무를 수 없고,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그 선택은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옥죄어온다. 운명이 뒤바뀐 쌍둥이 형제의 불행은 그렇게 예상 가능한 루트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배우들은 특수 분장도 없이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20여년의 세월을 표현해낸다. 조정석 송창의 오종혁 구원영 문종원 등 누구 하나 뒤쳐짐 없이 각자의 색깔을 제대로 낸다.
“왜 날 안 보냈어? 그럼 내가 쟤처럼 될 수 있었잖아.” 절망스러운 환경속에서도 한 번도 엄마를 탓해 본 적 없었던 가난한 쌍둥이는 마지막 순간 엄마를 원망한다. 공연 내내 해맑은 모습을 보여줬던 부유한 쌍둥이는 이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이들은 각각 어떤 생각에 빠졌을까. 이들을 죽음으로 몬건 진정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순간, 잔인한 진실을 털어놓은 이들의 엄마를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저마다의 인물에게 빠져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섣불리 시비를 가릴 수도 없도 결론을 내기도 어렵다. 단조로움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매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공연이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9월 14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미키에는 조정석 송창의가, 에디는 장승조, 오종혁이 번갈아 연기한다. 진아라, 김기순, 최유하, 심재현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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