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조선시대 양반들이 점잖았다는 선입견이 있다. 공자와 맹자를 읽고, 유학을 생활의 도리로 삼았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양반들도 남자였다. 여자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양반들이 점잔만 빼고 살았을까? 조방꾼이라는 직업만 봐도 이 얘기가 얼마나 거짓말인지 알 수 있다. 조방꾼은 기생들의 뒤를 봐주는 기둥서방이다. 단순히 뒤를 봐주는 정도가 아니라 손님과 연결시켜주는 중개인과 보디가드 역할까지 떠맡았다. 대전별감이나 의금부 나장 같이 권력과 가까운 이들이 주로 조방꾼을 맡았지만 나중에는 다른 직업 없이 조방꾼만을 전문적으로 맡는 이들이 생겨났다. 아울러 규모도 커져서 한 두 명이 아닌 수십 명의 기생을 관리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오늘날의 보도방 업주과 유사한 일을 했던 셈이다. 차이점이라면 현대의 보도방 업주들의 처벌과 비난의 대상이라면 조선시대 조방꾼들은 유흥문화를 주도했으며 당당한 스타 대접을 받았다. 이것은 당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놀이가 바로 술과 기생들과 어울리는 것이고, 외도라는 인식도 없었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활보하던 조방꾼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벙어리 조방꾼 최가였다. 말로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인 조방꾼이 벙어리라니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진짜 벙어리가 아니라 입이 무거운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추재기이(秋齋紀異)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면 실제 벙어리가 맞는 듯하다. 벙어리이긴 하지만 그는 관기와 사창들을 모두 부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보통 관직이 없는 경우라고 해도 어른에게는 관례상 생원이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많았다. 영조시대 활약했던 책쾌 조생도 다들 조생원, 줄여서 조생이라고 불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는 최씨 혹은 최가라고 했던 것으로 봐서는 일찌감치 조방꾼으로 나섰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말은 비록 못하지만 허우대가 멀쩡했고 손짓발짓으로 의사표현을 했다. 이렇게 되자 말을 못한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입이 무거워야 했던 조방꾼으로서 큰 장점이 되었다. 단순히 입만 무거웠던 것이 아니라 신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손님의 부탁을 받으면 어떻게든 성사시켜줬고, 그 일에 대해서는 어디 가서도 발설하지 않았으니 싫어할 사람들이 어디 있었을까? 그렇게 해서 많은 돈을 벌어서 옷을 잘 차려입고 부자 집 도령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으니 단연코 사람들 눈에 띄었다. 성을 사고파는 것이 불법이 된 요즘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범죄자였지만 당시에는 화류계를 주도하는 인물이었다. 거기다 벙어리라는 핸디캡을 딛고 많은 돈까지 벌었으니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입이 무겁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으로만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손가락을 둥글게 해서 서쪽을 바라봤으며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면 꽃가지를 잡고
정명섭(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