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유용석 기자 |
탄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무대였다. 한 멤버의 준비되지 않은 가수로서 역량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개개인이 아닌, '세 사람'의 힘으로 뭉쳤을 때는 충분했다. 'JYJ' 하나일 때 그들은 진정 '왕'이라 칭할 만했다.
입추가 지난 이날, 해가 지면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럼에도 잠실벌은 뜨거웠다. 약 3만명이 넘는 여성 인파를 뚫고 주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곳곳에는 암표상이 득세했다. 주변에 남성은 일부 취재진과 안전요원, 그들 뿐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JYJ가 등장할 무대는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그리고 JYJ가 나타나자 관객들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JYJ는 잔잔한 멜로디 '크리에이션(Creation)'으로 포문을 열었다. 대 서사시를 여는 일종의 프롤로그였다. 이어 박진감 넘치는 곡 '비 더 원(Be The One)'으로 분위기를 달궜다. 처음부터 아낌없이 터진 폭죽과 불꽃은 관객들의 심박수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이 때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무대 배치. JYJ는 잠실주경기장이라는 넓은 공간을 빌려 절반도 활용하지 않았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기 보다 최대한 객석과 가까이 호흡하기 위한 의도였다. 가로폭이 넓은(100m) 대형 무대를 꾸며 사각지대를 최소화 했다.
레이디 가가 등 과거 이 곳에서 공연한 가수들은 유료 관객을 늘리려고 주로 경기장 폭이 긴 세로 방향으로 무대를 꾸몄다. 이렇게 되면 무대 양쪽에 있는 관객들은 '찬밥' 신세여서 스크린만 보다 오기 일쑤다.
물론 사방이 뚫린 원형 무대를 만드는 가수도 있지만 극히 드문 예다. 300만 명가량의 국내외 팬을 확보하고 있는 JYJ의 4년 만 공연에 티켓 판매가 걱정될 일은 없었다. 관객 수 손해를 감수하고 팬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려는 의지였던 셈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이 있다. JYJ의 유럽·남미 팬들은 비교적 작은 공연장에서 이들을 본 게 정말 '행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시아 팬들은 대개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한다.
JYJ의 첫 코멘트는 "잘 지냈죠? 잊지 않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준수의 말에 '우리를 겨우 그 정도로 봤느냐'는 듯한 팬들의 아우성이 쏟아졌다. JYJ는 짧게 인사한 뒤 "다음 곡을 하겠다"는데, 팬들은 오히려 원망의 목소리를 냈다. 그들이 얼마나 JYJ에 대한 목마름이 컸는지 엿볼수 있는 대목이었다.
JYJ는 과거 히트곡부터 멤버별 솔로곡을 연달아 불렀다. 준수는 일렉트로닉 팝, 유천은 발라드, 재중은 록이 강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조화를 이뤘다. 준수의 섹시한 퍼포먼스는 관객을 미치게 했고, 유천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재중이 이내 흥분의 도가니를 만들어 공연장을 들썩이게 했다. 소름돋는 가창력을 뽐낸 재중의 무대에 관객들이 너무 빨려든나머지, 강렬한 라이브 밴드가 조명되지 않은 연출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와중에 재중은 "송치(송아지 가죽) 옷이 덥다"며 탈의, 팬들을 자지러지게 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3년 전 곡을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는 게 인상적이다. 역시 훌륭한 콘텐츠의 힘은 막강하다. 여러 제약 속에 그들을 굳건히 버티게 한 원동력이다. 최근 발표한 정규 2집 '백시트(Back seat)' 등의 첫 무대는 데뷔 10년 차 JYJ의 성숙된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난 집약체였다.
이 콘서트는 적어도 한국 팬들에게 JYJ 멤버들의 군 입대 전 마지막 무대일 수 있다. 이들은 직접 쓴 편지를 팬들에게 낭독하는가 하면, 수 차례 고마움을 전했다.
JYJ는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를 믿고 따라와준 팬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울어주었던 것,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고마움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지내온 시간들보다 앞으로 만들 시간이 더 행복할 거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날 콘서트는 2시간 30분이 넘게 진행되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성황리에 끝날 무렵, 한 가요계 관계자의 말이 떠올랐다.
"JYJ의 무대를 보면 아름답다. 동방신기(유노윤호·최강창민) 2명의 무대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들이 다섯명의 한 팀이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당장 이뤄지기 힘든 꿈이겠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언젠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한 무대에 서는 '즐거운 상상' 한 번쯤은 허락되지 않을까? 텅빈 무대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길, 바람은 찼고 마음 한 구석은 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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