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오는 날의 거리홍보 |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바람은 조금 누그러져 홍보를 시작했다. 현지인들도 방한복을 꺼내 입은 고약한 날씨에 얇은 태권도복에 맨발로 돌바닥을 딛고 서 품새를 하는 단원들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맨 앞에 태권도계의 김연아라 불리는 가녀린 몸매의 윤미정 코치가 있다.
원래 거리홍보는 매일 공연을 해야 하는 주연배우들 대신 코러스들이 위주가 되어 진행했지만 아침부터 내린 비로 바닥이 위험하게 미끄러워 경험이 부족한 코러스를 대신해 본진들이 하기로 했다. 그래도 날이 너무 추워 비가비의 유일한 여배우인 윤미정 코치님은 홍보에서 빼려고 하자 대뜸 신발을 벗고 맨발로 나선다.
홍보 시범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비바람 속에서 선보이는 시범에 평소보다 더 뜨거운 박수가 나온다. 세차게 내리는 이 비를 맞고 나면 며칠 고생할 것이 분명하지만 단원들에게 미안해 우산을 쓸 수가 없었다. 어느새 빗물이 눈물로 변하고 있다.
↑ 에딘버러의 아름다운 거리 |
↑ 멀리 에딘버러성이 보이는 광장 |
[MBN스타] 몸살 기운이 있는지 따스한 얼그레이티를 마셔도 오슬오슬 춥다. 오늘은 에딘버러에 도착한 이후 가장 추운 날이었다. 어찌나 춥고 바람이 부는지 나름 3년 전 경험을 바탕으로 챙겨온 방한복과 머플러로 무장하여도 옷 속으로 들이치는 바람과 차가운 비는 몸을 움츠리고 두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다. 오늘은 꼭 우리나라 늦가을만큼 추운 것 같다. 극장공연을 마치고 로열마일로 가 거리홍보를 할 때가 추위의 절정이었다. 웬만한 비바람은 일상적인 곳이라 평소에는 비가 내려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거리도 한산했다.
에딘버러는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한 런던보다 더 흐린 날이 많다고 한다. 어제 만해도 해가 비치는 아름다운 날씨여서 반팔을 입고도 땀을 낼 정도였는데 하루 만에 변덕을 부려 모두가 추위에 움츠리고 있다. 심지어 하루 동안에도 아침, 점심, 저녁의 날씨가 급변한다. 가방에 우산과 방한복은 필수로 챙겨서 다녀야한다. 3년 전 감기에 걸려 크게 혼이 났기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챙겼음에도 몸에 탈이 난 것 같다.
↑ 도시투어 버스정류장 |
날씨뿐만이 아니다. 교통시스템도 어찌나 불편한지 숙소가 있는 머셀버러역에서 공연장으로 가는 하이마켓역까지 매일 타는 기차는 아직까지도 철도 승무원이 기차에 함께 타서 표를 끊어준다. 승무원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 역에서 인원을 체크하기 위해 바쁜 갈 길을 막는 것은 다반사이다. 2016년에야 교통카드가 생길 거라고 한다. 인터넷도 느리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느리고,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는 속도도 느리고, 슈퍼마켓의 계산속도도 느리다.
변덕스러운 날씨의 도시, 불편하고 느린 도시 에딘버러에서 어떻게 프린지 페스티벌이나 국제 페스티벌, 밀리터리 타투와 같은 국제적인 축제들이 발전했을까?
프린지 페스티벌이 서울에서 개최된다면 빛의 속도를 자랑하는 인터넷부터 도시 곳곳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편리한 지하철까지 모든 시스템들이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을 것이다. 게다가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훈훈한 바람이 살랑거리는 봄이나 높은 하늘이 펼쳐지는 가을이라면 거리홍보도 거리공연도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에딘버러에는 이 모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신의 한 수가 존재한다.
사람과 세월, 사람과 역사가 함께 만든 도시 에딘버러 자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옛 건물을 개인적으로 철거하거나 신축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로열마일뿐만 아니라 발길 닿는 곳 모두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다. 스타벅스 커피숍 건물도, 소시지와 으깬 감자를 파는 작은 식당건물도 모두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배여 있는 옛 건물들이다.
↑ 로열마일의 거리풍경 |
최첨단의 세련된 마천루는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 있을 때 사람이 만든 환경은 모두 딱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 에딘버러는 사람이 만든 딱딱함을 오랜 세월이 보듬어 준다. 사람과 세월이 함께 만든 아름다운 도시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다.
성상희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