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수영 인턴기자]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의 문종원(36). 내레이터로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한 그는, 2003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후 어느덧 12년차를 맞은 중견 뮤지컬 배우다.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파리’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했고, 2012년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로 스크린에 진출했으며, KBS 드라마 ‘빅맨’으로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 관객과 더 가까이
‘블러드 브라더스’는 1960년대 영국 공업도시 리버풀을 배경으로 어렸을 때 헤어진 쌍둥이 형제 미키와 에디가 우연치 않게 만나 우정을 싹틔워 가며 벌어지는 엇갈린 운명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문종원은 극중 내레이터 역할을 맡았다.
지난해 더 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그가 국내 팬들에겐 다소 생소한 ‘블러드 브라더스’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블러드 브라더스’는 배우들 사이에서 소문이 무성한 작품이다. 문종원은 이 작품이 메시지가 강하고 쇼 성향이 적으며 배우들 스스로 탐구하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서사적인 인물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는 요즘 아름다운 말들이 나열돼있는 내레이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것. 좋은 배우’들도 출연을 결정하는데 한몫했다. 동료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잘하는 배우’들은 많은데 ‘좋은 배우’들은 찾기 힘들어요. 송창의 조정석 등 ‘블러드 브라더스’의 배우들은 무대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들이고 사고방식도 좋아요. 다음 공연에서도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그는 ‘블러드 브라더스’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한 듯 했다. 관객과의 벽을 허물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다고도 했다.
“관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사람이 내레이터 역할이에요. 오히려 저를 내려놓고 다 드러나게 연기하니 관객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 내레이터에 대한 남다른 시선
내레이터 역할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무대에 나타나는 문종원은 ‘블러드 브라더스’ 공연을 시작하기 전까지 동선을 수정해야했다. 그는 연출자에게 ‘문종원 만의 내레이터를 만들어달라’라는 주문을 받았다. 이런 믿음에 부합하기 위해 리허설 때 다양한 시도를 했다.
“어느 날 에디 역의 (장)승조가 얼굴이 사색이 돼 ‘형 원래 거기에서 나와요?’라고 했어요. 등장과 퇴장이 따로 정해지지 않아 무대 뒤에서 계속 등장할 타이밍을 연구했죠. 사실 서로가 믿음이 없다면 그렇게 행동 못해요. 어떤 방식으로 등장해도 배우, 스태프들 간에 다 케어가 되니 무대에서 점차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 때문일까. 무대에서 시종일관 여유 넘치고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을 흡입한다.‘빨대’ 같은 존재감이다.
내레이터는 관객을 향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 뒤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역할이다. 역할에 심취한 그는 눈을 빛내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내레이터는 큰 그림을 보는 자리에요. 제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인간들이 사는 것을 바라보는 입장이죠. 이 작품을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한다면 저는 이 게임을 관장하고 있어요. 느낌이 굉장히 새로웠고 이 과정에서 습득하게 되는 것도 많아요.”
그는 한 걸음 뒤에서 무대를 관장하는 내레이터를 연기하며 자신을 차분하게 성찰할 수 있었다. 무대의 미학, 낭만을 중요시 여기는 문종원은 ‘블러드 브라더스’의 서사적인 대사를 흡수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만히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도 제 무대를 보셨어요. 선생님께서 ‘지금도 좋은데 다른 방향으로도 생각해보는 것이 어때?’라고 제안하셨죠. 이를 계기로 더 탄력을 받았어요. ‘이야기꾼’으로서의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고 어떤 부분에서는 직접 극에 참여하기도 싶어요.”
이처럼 문종원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무대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하고 있다.
◇ 배우로서의 새 신호탄 그리고 인간 문종원
최근 나무엑터스와 한솥밥을 먹게 된 문종원은 배우로서의 새로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다소 늦은 나이에 KBS2 드라마 ‘빅맨’을 통해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비쳤다. 하지만 ‘드라마 새내기’의 열정은 어느 배우 못지않다.
“처음에는 드라마 현장이 굉장히 어색했어요. 선배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았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대기 시간에 차 안에만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드라마 현장에 멀뚱멀뚱 서서 길을 비켜줬어요.(웃음) 현장에 조금이라도 나와 적응하고 배우려고 했죠.”
아들 둘의 막내로, 딸 역할을 하며 성장한 문종원은 현장에서 ‘문블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단 시간 내 강지환 이다희 한상진 등의 배우들과 친해지며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바빠지는 일정 때문에 친목을 도모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동료 배우들과 선배들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권해효 선배가 91년도에 ‘블러드 브라더스’를 하셔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죠. 정말 좋았고 많은 도움이 됐어요.”
생애 첫 드라마 ‘빅맨’에서 맡은 역할은 원래 있었던 캐릭터가 아니었다. 뜻밖의 오디션 기회가 주어졌고 감독 앞에서 열과 성의를 다해 15분 동안 자신만의 연기를 펼쳤다. 이후 감독과 1시간 동안 연기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때 눈도장을 받은 것이다. 이에 감독은 ‘빅맨’에서 없던 캐릭터를 만들어 문종원을 캐스팅했다.
“감독님께서 15분 연기를 끊지 않고 다 봐주셨죠. 감독님께서 ‘내 작품으로 입봉해야지’라고 하셨는데 정말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동이었어요. 감독님께 감사했어요.”
그에게 드라마 ‘빅맨’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재미를 찾아준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 막 방송 활동에 물꼬를 튼 문종원은 배움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있다. 카메라만 있는 단출한 여행 프로그램 등 조금 더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싶은 그는 몸을 던져서라도 계속 배우고 싶어한다.
“‘빅맨’을 통해 궁금해지는 것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어요. 방송에 출연하면 얼굴이 더 알려지겠지만 그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 이유에요. 잘될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제 인생에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문종원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발길질’을 해왔지만 연기를 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이 존재하는 것
진정성을 갖고 연기에 대해 연구하는 문종원은 앞으로도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그는 쉼 없이 질주하고 있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영국 극작가 윌리 러셀의 대표작으로 오는 14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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