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현장이 그만큼 편안하고 즐겁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그의 농담이지만 드라마의 중심이 누구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변수다. 최소한, 드라마 수출을 통한 수익도 염두에 둔 제작사 입장에서 그의 국제적 인지도와 인기는 부인할 수 없는 캐스팅 이유 중 하나다.
15일 서울 SBS 목동 사옥에서는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비는 이 드라마에서 히트 작곡가 출신 연예기획사 AnA 대표 이현욱 역으로 출연한다. 죽은 연인의 여동생 세나(크리스탈 분)를 보호해주는 인물이란 설명이다. 시쳇말로 '키다리 아저씨'에 비유될 만하다.
비는 "수없이 고르고 고른 작품"이라며 "30대 초반, 마지막으로 동화 같은 '착한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집에서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른바 '막장' 따위는 없다는 주장이다. 비는 "요즘 드라마는 수위 높은 갈등 구조가 많다. 그런 것을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간 각종 구설과 소송에 휘말려온 비의 이미지 쇄신에 알맞은 배역이다.
가수 비가 아닌, 배우 정지훈으로서 각오는 남다르다. 그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갔다. 발성과 발음 레슨을 두 세달 정도 받았다"며 "물론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시청률이나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시청자, 혹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박영규는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심각하게 해보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역시 나는 무게 있는 역할보다 젊은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좋다. (극 중) 누가 내 아들이냐고 물었더니 정지훈(비)이라기에 내가 한다고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만, 어느 누구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부족하면 시청자는 극에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연예기획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상 실제 가수 출연이 많다. 걸그룹 f(x) 크리스탈과 베스티 해령, 인피니티 엘이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다.
특히 엘은 한류 열풍 주역인 아이돌 그룹 '무한동력' 멤버로 분했는데, 나머지 동료 멤버들도 사실상 가수이거나 지망생들이다. 인피니트 동료 멤버 호야, 인피니트 멤버 성열의 동생 대열,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최성윤이 한 멤버를 이뤘다.
앞서 이들 '무한동력'의 티저 이미지가 공개됐을 때 여느 아이돌 그룹 못지않는 화제를 불러모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닌, 드라마를 통한 아이돌 가수가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 제작사의 계산된, 보이지 않는 전략이 숨어있을 수 있다. 적어도 요즘은 OST 콘서트 시장이 확장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엘은 "(오히려) 가수를 본업으로 두고 있다 보니 많이 (연기)하기 편하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화려한 무대 뒤 감춰진 쓸쓸함이 많이 담겼다. 가수들이 겪는 고충이나 뒷이야기가 사실적인 대본을 보고 놀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여주인공인 크리스탈에 대해 비는 "가수 후배지만 나를 오빠처럼 잘 따라주고 열두살 나이 차이에도 전혀 어린 친구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와도 정신세계가 비슷한 것 같다. 연기를 잘하더라"며 엄지를 세웠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괜찮아 사랑이야’ 후속으로 오는 17일 첫 방송된다. SBS ‘닥터챔프’와 ‘여인의 향기’로 호흡을 맞췄던 노지설 작가와 박형기 감독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다.
관건은 결국 진정성이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만한, 드라마 본연의 기본인 '이야기'와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는 배우들 역량에 달렸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가 누군가에게 '너무 원수 같은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fact@mk.co.kr / 사진=유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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