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를 벗기로 다짐한 서태지의 첫 선택은 다름 아닌 ‘국민 MC’ 유재석이었다.
“태지야~”라고 건넨 수줍은 인사에 “응, 재석아”라고 응답하며, ‘동갑내기’ 두 친구의 21년만의 재회는 유쾌하고 또 신선했다.
이날 서태지는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로 이야기 했다. 딸 ‘삑뽁이’의 아빠로서, 그리고 아내 이은성의 남편으로서 전한 일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가족사진을 수줍게 공개하고 딸의 태명에 얽힌 비화,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조근 조근 이야기하는 서태지의 모습은 예상 외로 친근했다. 한 세대의 문화를 군림했던 그가, 그간의 겹겹이 쌓인 틀을 스스로 뚫고자하는 모습에서 낯설지만 뭔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각종 민감한 사안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졌다. 전 부인인 이지아에 대한 것도 빠질 수 없는 부분. 그는 “당시엔 참 어렸고, 다 잘될 줄 알았지만 남녀 사이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남자로서 다 미안할 뿐”이라며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일련의 공방에 대해서는 “일부 내가 너무 범법자처럼 돼 있는 부분들이 있어 힘들었다”고 해명했고, “각종 악플들도 관심의 일부라고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감금의 아이콘’이라는 시선은 상처가 되더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솔직히 예능도, 대중과의 소통에도 ‘초짜’인 그로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아쉬운 건 그런 그의 의지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한, 팬들의 강렬한 궁금증과 게스트에 대한 배려를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한 ‘해피투게더’ 제작진과 유재석에게 있다.
서태지와 말을 놓으며 ‘친구’가 되기로 한 유재석은 여전히 ‘과도하게’ 조심스러운 모양새였다. 여태껏 개성 넘치는 단체토크, 리얼 예능에서 보여준 정리와 받쳐주기 식 진행에서 사실 이날만큼은 한보쯤 앞서 나왔어야 했다.
‘라디오 스타’ ‘무릎팍 도사’ ‘힐링 캠프’ 등처럼 대놓고 파고들기는 힘들더라도,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갈 수 있도록 적절한 완급 조절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 번 여쭤봐야죠~어땠었나요?” “하고 싶은 말씀이 좀 더 있을 것 같은 데요?” 같은 언급 수준으로 시작된 질문은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박미선이 지원사격에 나서 구체적인 질문과 정리에 힘을 보탰지만 이 역시 역부족. 억지로 이야기를 캐내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힘들게 꺼낸 이야기를 겉핥기식으로만 다뤄 아쉬움을 남겼다.
배려의 아이콘, ‘국민 MC’의 일관된 진행 방식이 독이 됐을까.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탁월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진지한 ‘소통’을 이끌어내는 데엔 내공이 부족한 모양새였다. 게스트의 성향에 따라 맞춤식 진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날만큼은 유재석이 간과한 듯 했다.
제작진은 유재석과의 독대를 통해 파격적인 포맷 변경을 보여줬지만, 사실상 그 효과는 미미했다. 단독 토크를 통해 보다 짚어야할 민감한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다뤄지고 이어지는 단체 토크에서 서서히 유쾌하게 풀어갔으면 더 좋았을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절친 김종서의 투입을 비롯해 김신영·조세호의 서태지와 아이들 안무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서태지에 대한 예우는 충분히 차렸지만 방송 구성면에서는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이같은 아쉬움은 고스란히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유재석과 서태지의 만남 만으로도 떠들썩했던 분위기와 달리 이날 ‘해피투게더’의 시청률은 전주에 비해 4.0%P나 하락해 7.5%(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대부분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서태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응원 글은 쇄도했지만 이날 방송 포맷, 유재석의 진행에 대해서는 쓴소리가 줄을 이었다.
시청자들은 “방송보니까 이지아라는 이름 자체를 못 올리더라 MC들이. 빙빙 돌려가면서” “솔직히 서태지 잘 모르는데 설마하고 티비 챙겨봤는데 기대한 내용은 말 아끼며 거의 안 꺼냈지” “서태지가 다른 방송에 출연하면 좋았을텐데. 규현, 구라옹이 찰지게 살려줄 텐데. 종신이형이랑 국진옹이 적당히 커버도 칠 테고” “서태지를 데려다 놓고 이것밖에 못하나” “유재석 단독 토크의 한계” “솔직히 그다지 알맹이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음” “할건 하고, 쉴드 칠 건 치고 해야지. 답답해서 원” “첫 데뷔 예능이 왜 하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만 나와 기대했는데 아쉽네요”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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