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은 없었다. 가수 서태지의 신곡 '소격동' 음원이 10일 정오 공개됐다. 앞서 아이유가 불렀던 '소격동'의 가사와 멜로디 모두 동일하다. 가창자에 따른 곡 분위기만 다를 뿐이다. 이에 대한 음악 팬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쉽게 말해 '아이유 버전'과 비교해 좋다 나쁘냐다.
애초 서태지의 곡을 아이유가 부른 것이다. 비교 대상으로 맞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서태지 차지여야 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아이유의 곡을 서태지가 부른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아이유의 파급력은 컸다. 아이유 '덕'이 '덫'이 된 셈이다.
물론 서태지의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는 20일 발매된다. 본작의 뚜껑은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선공개곡 '소격동'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았다. 5년 만에 돌아온 서태지의 음악적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단추는 잘 뀄다는 평이다. 아이유가 불렀던 '소격동'은 발매되자마자 국내 주요 음악사이트 실시간 차트 정상을 석권했다. 동화같은 노랫말이 아이유 특유의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곡으로 완성됐다.
호평이 쏟아졌다. 서정적이면서도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한 노랫말 속 숨겨진 의미는 '문화대통령' 서태지로서의 면모를 엿보게 했다. 일각에서 아일랜드 출신 밴드 처치스의 곡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워낙 표절과 거리가 먼 탓에 금세 수그러들었다.
문제는 많은 팬이 더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음악 팬 다수는 서태지에게 반전을 기대했다. 서태지 버전의 '소격동'은 가사 순서가 바뀐다거나 좀 더 강렬한 록 사운드의 편곡을 예상했다. 과거 그의 히트곡 '교실이데아'나 '시대유감'처럼 사회적 억압에 항거하는 목소리가 담길 것으로 팬들은 추측하며 흥분했던 터다. 작금의 현실이 반영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태지의 '소격동'은 아이유의 소녀 감성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목소리도 서태지 특유의 음색 그대로다. 그의 목소리에 덧입혀진 기계음도 새삼스럽지 않다. 신스팝 음악 장르의 흔한 특성이기도 하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획을 그어온 서태지이기에, 엄청난 기대감은 곧 실망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마니아 팬들은 "서태지의 '소격동'이 슬픔과 향수를 더욱 자극한다"고 애써 자위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서태지의 '소격동' 뮤직비디오에는 몇몇 구체적인 장면들이 담기며 전두환 정권 당시 녹화사업 등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음을 확실히 했다.
분명한 점은 서태지가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서태지는 지난 9일 방송된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 개인사를 털어놓는가 하면, 딸과 결혼식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방송에서 "아내와 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대통령'이자 '신비주의 대명사' 서태지이기보다, '아빠' 서태지의 냄새가 풍겼다.
서태지는 이날 카카오뮤직의 한 코너에서 "소격동은 제가 자라온 정말 예쁜 한옥 마을이다. 그 마을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아름답게 그린 노래다. 이 곡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도, 여러분의 옛 마을에 잠시 머물다 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더불어 그는 "이번 9집 앨범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 동화 같은 느낌이다"고 설명했다. '소격동'에 대한 해석 역시 서태지 측은 "음악을 듣고 보는 이 각자의 몫"이라면서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태지의 오랜 한 팬은 "여전히 그는 최고다"면서도 "세상과 타협할 필요 없던, 누가 뭐래도 '옳다고 판단되면 할 말하고 행동하던'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그립긴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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