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질나는 집을 나와 보호시설인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자란 열일곱 영재(최우식 분). 시설을 나가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무책임한 아버지 집으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때문에 영재는 선량을 베푸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무릎을 꿇어주며 신부가 될 모범생처럼 살갑게 군다. 그러나 남몰래 후원물품을 훔쳐 팔기도 하고 거짓말로 친구를 배신하며 하루하루 버틴다. 눈칫밥 먹으며 살기도 바쁜 영재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찾아온다. 자신에게 동생마저 떠맡기려는 아버지 때문에 영재는 참을 수 없는 절망, 분노로 폭발한다. / ‘거인’
[MBN스타 여수정 기자] 10대의 성장통을 조금은 과장됐지만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 영화 ‘거인’. 열일곱 살처럼 그저 철없이 밝게 지내야 될 주인공 영재는 주변의 눈치를 너무도 살피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눈칫밥과 책임감으로 거인처럼 자라난 이 모습이 보는 내내 먹먹하고 도리어 미안해진다.
무엇보다 영재 역의 배우 최우식의 기막힌 존재감과 열연이 관객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클로즈업이 많기에 최우식의 표정, 대사, 얼굴근육 움직임 하나하나까지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드라마 ‘폼나게 살거야’ ‘옥탑방 왕세자’ ‘패밀리’ ‘운명처럼 널 사랑해’ 등에 출연하며 대중을 만났던 그의 진지하고 성숙된 연기가 신선하고 반갑다. 새로운 연기 변신이라 몰입되고 집중되는 것이다.
배우의 열연도 좋았고 작품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연출력도 완벽했다. 자전적 내용을 담았기에 ‘거인’에 대한 김태용 감독의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2010년 첫 단편 ‘얼어붙은 땅’으로 제63회 칸 영화제 시네마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덕분에 김태용 감독은 ‘국내 최연소 칸 영화제 진출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에 거만하지 않고 꾸준히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똥파리’ 제작부, ‘인생은 새옹지마’ 연출 각본, ‘신촌좀비만화’ 각본, ‘원나잇 온리-밤벌레’ 연출, ‘도시의 밤’ 각본 연출, ‘서울연애-춘곤증’ 연출 등으로 필모그래피를 가득 채우고 있다. 또 2011년 제1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대상, 2011년 제1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부문 최우수작품상, 2010년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 이스타항공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거기에 이번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을 받아 영화제의 관심을 모은 것은 물론 비전의 밤에서 시민평론가 상을 수상했다. 이는 ‘거인’으로 또 다시 김태용 감독의 연출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니 앞으로 김태용 감독의 행보에 모두가 집중 할 수 밖에.
↑ 사진제공=영화사 하늘 |
Q.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소감은.
A. “우식이랑 떨고 있다. (웃음)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고 관객들에게 ‘거인’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고 떨린다. 10년 전 부산에서 다르덴 형제의 ‘아들’을 보고 영화감독이 돼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 후 나의 작품으로 부산을 찾으니 감개무량하고 열심히 잘 살았구나 싶다. 또한 어린나이에 칸 영화제 초청은 나이가 어림에도 해냈다보다는 내가 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하는구나를 느꼈다. 이번 영화제 초청도 마찬가지다. ‘거인’이 사적인 영화라 공감할까 걱정했는데 초청받아 기쁘고 이는 영재에 다들 공감하는 것 같다.”
Q. 자전적 이야기 ‘거인’의 제목이 궁금하다.
A.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몸만 자란 한 소년을 대변할 만한 단어를 찾다가 ‘거인’을 생각해냈다. 아직 미성숙한 존재인데 준비 없이 어른이 된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Q. 극장 개봉 전, 영화제 공식 초청은 물론 공개되는 예고편과 포스터에도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대중의 이목을 느끼고 있는가.
A. “사실 ‘거인’은 작게 시작한 영화다. 그럼에도 포스터와 예고편 반응이 좋아 기쁘다. 우식이와도 이런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극중 주인공 우식이는 내 동생과 동갑이다. 우식이에게도 형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잘 맞고 그가 내 동생같다. 정말 잘한다. (웃음)”
Q. 배우 최우식에 대한 칭찬과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A. “‘거인’은 100% 우식이가 이끄는 작품이다. 그가 집중력과 힘을 싣고 작품을 끌고 가는 것이다. 그동안 드라마 작업을 주로 했기에 걱정했다. 그러나 찍으면서 정말 놀랐고 굉장한 결과물이 탄생한 것 같다. (웃음) 이제훈 이후 잠잠했던 20대 남자배우의 계보를 최우식이 이을 것 같다. 인물 클로즈업은 물론 이야기에도 배우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담 없이 정말 잘해줘서 찍는 내내 신났다. 영화의 내용은 무겁지만 촬영 현장은 화기애애했다. 우식이가 영재에 너무 몰입해줬기에 촬영이 끝나고 영재를 빠져나온 우식이가 서운하기도 했다.”
Q. 그동안 보였던 작품이 독특하면서도 섬세하다. 주로 어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가.
A. “유럽영화들은 주로 흔하지만 영화의 소재로 다루지 않은 것들을 다룬다. 그래서 유럽영화들을 좋아해 자주 보며 이 영화들 안에서 영감을 얻는다. 소재는 유럽영화에서 찾지만, 그 배경을 한국으로 변화시키는데 그 안에서 오는 변주하는 에너지가 있다.”
↑ 사진제공=영화사 하늘 |
Q. 한 소년의 성장통이지만 이를 통해 가족의 소통, 친구의 소통까지 울림이 강하다. 특별히 ‘거인’에 담고자한 메시지가 있는가.
A. “보통 10대를 다룬 영화들은 학교 폭력, 성폭행, 왕따 등인데 이런 소재가 아닌 정말 성장통으로 힘들어하는 10대 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기쁨과 분노, 슬픔 등의 다양한 감정 변화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10대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었고 이를 위해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했다. ‘거인’을 통해 내가 나의 상처에 대해 너무 숨기지는 않았나이다. 모두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졌으면 한다. 극중 영재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공주’ 속 수동적인 한공주와 달리 자신의 운명에 직접 나서서 이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남자다. 정말 이번 작품은 위로가 됐으면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두가 솔직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특히 마지막 10분이 절정이다. (웃음)”
↑ 사진=포스터 |
Q. 차기작은.
A.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부도덕한 관계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의 사랑, 관계를 다룬 작품을 쓸 예정이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