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보이지만 괜찮아’, ‘악마는 끈팬티를 입는다’, ‘발기해서 생긴 일’….
어딘가에서 많이 봤던 제목들이다. 뭔가 이상야릇한 제목들. 영화 ‘레드카펫’ 속 전설의 에로영화 감독 박정우(윤계상)가 만든 명작(?)들이다.
상업영화 연출을 꿈꾸지만 에로영화 속에 갇혀있는 박정우 감독. 그가 그토록 바라던 멜로영화를 연출하기 위한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가 영화 ‘레드카펫’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박범수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녹였다. 270여 편의 성인영화를 연출했던 박 감독이다.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과 편견까지 영화에 담았다. 하지만 그게 주가 아니고, 전부도 아니다. 감독은 과거를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레드카펫’은 에로와 로맨틱, 드라마, 코미디를 적절하게 버무려 상업영화를 향한 감독의 사랑과 의지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과거가 생각났는지 울컥하기도 한 그는 “그런 시각이 당연하고, 그런 말들 때문에 ‘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더 만들면 조금이나마 다른 감독들과 비슷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힘을 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극중 깐족대고, 야한 대사를 차지게 구사하는 오정세가 ‘레드카펫’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가 맡은 역할인 에로영화 조감독 진환은 “웃긴 영화는 관객을 웃기면 되고, 에로 영화는 관객을 꼴리게 만들면 돼”, 흥분한 상태의 황찬성에게 “너 지금 나 뭐로 찔렀냐?” 등의 대사를 구사하는데 관객의 배꼽을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실생활 같은 19금 언어구사력이 감탄과 존경을 표하게 만들 정도다.
오정세는 이날 시사회에서도 “성인영화는 보통 하루 만에 찍고, 지원을 받아 만드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이틀에 걸쳐 찍는다고 하더라. 또 5월은 가정의 달이라서 성인영화 비수기라고 한다”고 말해 내재한 웃음폭탄을 터트렸다.
에로영화를 찍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재로 사람들의 말초신경만 자극하려 했다면 영화는 ‘망작’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소재를 잘 사용했고, 섹시코드와 재미, 감동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엉성하고, 오글거리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오정세를 이용해 재미로 활용하는 기지도 부린다. 허무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박 감독의 이야기이니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배우들은 “감독님의 실제 이야기가 들어간 시나리오라 굉장히 흥미가 있었다”고 했다. 오정세는 “야하고 웃긴 코드가 마냥 야하거나 웃기지만은 않았다. 감독의 이야기가 투영돼 있으니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고 했고, 조달환은 “10년 전 ‘색증시공’에 출연했었는데 그때 본 시나리오만큼의 충격을 받았다. 깔깔거리며 자지러졌다.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감독님을 졸랐다”고 전했다.
황찬성, 이미도 등도 자신들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에로영화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의 멜로영화 도전기에 합류한 고준희는 사랑스러운 미소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 혹시 고준희의 강도 높은(?) 노출 수위를 기대했다면, 그런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배우 신지수가 약간의 노출을 감행하지만, 이상한 상상 역시 금물이다. 23일 개봉.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