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서 우리끼리 그랬어요. 알고 보면 제가 연기하는 태경이가 가장 불쌍하다고요. 사랑했던 사람은 숨겨진 누이였고, 여동생은 또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사람의 딸이니까요.(웃음)”
배우 김준(30)은 SBS 주말극 ‘끝없는 사랑’의 김태경에게 몰입해 있었다. 태경은 서인애(황정음)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남자. 해바라기 순정남 광철(정경호)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인애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여성들에게는 광철이 무척 멋진 캐릭터이긴 하겠지만, 김준 역시 꽤 매력적이다. 태경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시청자 의견도 꽤 있다.
낮은 시청률 등의 이유로 축소 방송되는 운명을 맞게 된 드라마 ‘끝없는 사랑’. 최근 자신의 촬영분을 모두 마친 김준은 “아쉽긴 하지만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김준은 “태경이는 솔직히 ‘이런 애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보같이 순수한 친구”라며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잡지에 실린 인애를 보고 사랑에 빠져 한국에 돌아오지 않나. 처음에 이 친구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다”고 웃었다. 실제 경험을 비춰봐도 이런 사랑을 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도 연애의 감정에서 순수한 마음은 있긴 하지만, 태경처럼 모든 것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준은 “‘잘 해보자’는 생각보다 ‘폐만 안 끼치면 될 텐데…’라는 생각으로 합류했는데, 많은 걸 배웠다”고 만족해했다. “주위에서 ‘이렇게 현장 분위기가 좋은 팀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라는 말도 그의 기분을 즐겁게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극 중 권력욕의 광기에 휩싸여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엄마로 나오는 선배 심혜진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걸 잊지 않았다.
“화면에는 독하게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정말 좋으세요. 연기할 때 집중 안 될 때가 있는데, 일부러 심혜진 선배님이 저희 편하게 하시려고 장난치시기 때문이죠. 저희 앞에서 이상한 춤도 추시고, 웃기기도 하니깐 연기를 못할 정도였다니까요. 심혜진 선배뿐 아니라 차인표·정동환 선배 등이 후배들을 어렵지 않게 대해주니깐 저희도 연기하기 편했죠. 무게 잡고 현장을 어렵게 만드시는 분들이 하나도 없었어요.(웃음)”
여배우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황정음과의 호흡도 기대했을 것 같다. 김준은 “사실 정음씨가 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편하게 대해줬다. 신경도 많이 써줘서 좋았다”고 만족해했다. 극 중 동생으로 나온 전소민에 대해서도 “성격이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라고 칭찬했다. “사실 전 적극적이지 못하고, 잘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다들 즐겁고 유쾌하신 분들이라서 친해질 수 있었어요. 또래인 (정)경호 형과도 친해져서 좋아요.”
김준은 최근 일본영화 ‘루팡 3세’로 스크린 데뷔도 했다. 일본에서 진행된 시사회도 다녀왔다. “SNS 반응을 보면 일본 팬도 늘어난 것 같다”고 흐뭇해한 그는 “이 합작영화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사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고 털어놨다.
‘루팡 3세’ 팀과 미팅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단다. 하지만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김준은 “‘에이~,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캐스팅 됐고, 김준을 본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은 그의 비중을 높였다. 아시아 전역을 무대로 한 도둑들의 신출귀몰한 활약상을 그린 영화에서 막내 팀원이었던 김준이 천재 도둑 기술자로 승격된 이유다.
시나리오도 대폭 수정됐다. 극 중 일본어와 영어를 반반씩 사용해야 하는 인물이라 연기하기 어려웠지만, 매일 노래를 듣듯 통역가들이 녹음해준 파일을 들었다. 하지만 통역가들의 말은 연기와는 달라서 오구리 슈운 등 친해진 배우들에게 일본어 대사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김준의 노력 등에 힘입어 영화는 개봉 2주만에 흥행 수익 1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꽃남’을 할 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어요. 운 좋게 처음으로 참여한 작품이었죠. 솔직히 연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을 때였거든요? 굉장히 좋은 기회를 만났고, 과분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전부터 준비했었더라고요. 냉정하게 바라보면 다른 사람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거였죠. 인기를 얻진 못했어도 좋은 기회를 얻어 일한 것만도 좋았어요. 한 번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인기를 얻었으면 그 당시에는 좋았겠지만, 장기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다른 제 장점이라고 한다면, 이제 전 군필자라는 것 정도 아닐까요? 하하하.”
‘끝없는 사랑’의 결말을 물었다. 행복할까? 우울할까?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제 영역을 넘어서는 질문이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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