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2012년 영화 ‘가시꽃’을 통해 대중을 만났던 이돈구 감독. 영화는 강요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한 10대 소년 성공이 10년 후,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속죄를 담았다. 당시 ‘가시꽃’은 박찬욱, 김기덕 감독의 뒤를 잇는 ‘잔혹미학’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단번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 같은 반응에 스스로 놀랐고, 평소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분들이기에 평가가 정말 영광이라고 밝힌 이돈구 감독은 ‘가시꽃’을 통해 죄의식에 사로잡힌 한 남자 성공의 심리와 그가 처한 상황을 너무도 섬세하고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표현했다. 극의 시작부터 엄청난 몰입도와 집중력을 전달하며 103분의 러닝타임동안 관객들을 성공의 세계로 안내했다.
특히 ‘가시꽃’의 순수제작비는 300만원이다. 감독을 포함해 총 10명의 제작진이 촬영에 임했고, 현장 제작진은 감독을 비롯해 단 4명뿐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 속에서도 치밀한 계획 아래에 단 10회 차에 모든 촬영을 끝냈다. 저예산에 빡빡한 촬영 스케줄이었지만 이돈구 감독만의 색깔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 사진제공=이돈구 감독 |
‘가시꽃’은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 커런츠 섹션에 공식 초청된 것은 물론,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분에도 초청돼 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여세를 몰아 제12회 마라케쉬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제38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제15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초청 등 여러 영화제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했다.
전작의 수상성적을 이어가듯 ‘현기증’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의 비전 부문에 초청돼 개봉 전 쾌거를 맞이했다. ‘현기증’은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김소은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고, 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다룬 영화다. ‘가시꽃’이 성공을 중심으로 10대와 사회에 집중했다면 ‘현기증’은 순임을 중심으로 가족에 좀 더 집중했다.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초반의 잔잔했던 감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친다.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의 연속이 어떤 이에게는 깊은 감정과 공포의 간접경험을, 또 다른 이에게는 불편함을 안기지만 연출력은 이번에도 흠 잡을 데 없다.
“‘가시꽃’ 성공과 ‘현기증’ 순임에게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둘 다 나약하지만 내면의 분노가 있다. 이들의 분노는 누구나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고, 숨기고 있던 내면의 분노 표출은 비슷하다. 난 8개월의 후반작업 덕분에 ‘현기증’을 100번도 넘게 봐서 지금은 무덤덤하다. (웃음)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밥맛이 떨어지더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갑자기였다. 한 번 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두 번을 보면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한 번 봤을 땐 안 보였던 인물 개개인의 사연과 장치, 대사 등이 더 잘 보인다.”
김영애는 ‘현기증’을 촬영하고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또한 도지원 역시 연기하기에 힘이 들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비극의 연속이다. 직접 각본을 쓴 이돈구 감독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난 전혀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 캐릭터들을 더 괴롭힐까에 열중했다. (웃음) 어중간한 타협과 웃음코드는 안되기에. 사실 캐릭터에 대한 고민 때문에 우울증을 앓을 시간도 없었다. ‘가시꽃’과 마찬가지로 ‘현기증’ 역시 콘티 제작에만 6개월이 걸렸다. 난 주로 콘티대로 찍는 편이고 날 괴롭히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문에 배우들이 따라오는 데 고생했을 것이다. 감정신은 테이크를 안 갔지만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단어 하나하나에 테이크를 갔다. 그래서 배우들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김영애 선생님은 순임으로 빙의했다. 제지가 안됐을 것이다. 감정의 무아지경이라 컷 사인만 줬을 뿐 카메라만 계속 찍었다.”
알려졌듯 송일국은 ‘가시꽃’을 보고 ‘현기증’ 출연을 바로 확정했다. 이에 이돈구 감독은 “‘가시꽃’을 보고 바로 송일국을 캐스팅 하게 됐다. ‘현기증’ 시나리오가 가기도 전이었다. 사실 대선배임에도 현장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 따라줬다. 연기욕심이 많고 성실하다. 또한 정혜 역의 이민지는 참한 일진을 원했는데 딱이었다.”
↑ 사진제공=이돈구 감독 |
“‘가시꽃’은 낭떠러지에 있다는 심정으로 정말 목숨을 걸고 찍은 작품이다. 총 10회 촬영이었는데 촬영 5일 동안 앉아서 4시간만 잤다. 스스로 작품 완성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있어 ‘가시꽃’은 정말 특별하고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영화를 찍게 해줬고 제주도도 안 가본 내가 영화 덕분에 해외에 초청받아 방문했다. 또한 많은 이들의 관심도 받게 됐다. 정말 기분이 좋다.”
본래 이돈구 감독은 연기과를 전공했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17살까지 ‘춤’에 빠져있어 꿈은 댄서였다. 끼 충만 이돈구 감독이 연출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는 뭘까.
“연기과라 연출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기술적인 부분에 콤플렉스가 많아 미친 듯이 연출 책을 읽곤 한다.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독후감상문으로 많은 대회에 입상하기도 했다. 연출력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 이해를 못해도 책을 읽는다. 또한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상황극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웃음) 학창시절 대전 댄스 팀이었는데 비보이였다. 아마 대전에서 제일 춤을 잘 췄을 것이다. (웃음) 고2때 춤을 위해 서울로 왔는데 춤에 관한 영화를 직접 8mm 카메라로 찍었다. 이때부터 작품을 만들고 찍는 게 좋더라. 본래 댄서가 꿈이었지만 춤으로 오디션에 합격해 연기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출도 관심이 갔다. 17살 후 현재까지 춤을 추지 않았는데 연말파티에서 벌칙에 걸려 춤을 춘 적이 있다. 오랫동안 춤을 안 췄음에도 몸이 동작들을 기억하고 있더라. (웃음) 솔직히 연기를 했을 때는 조금 외롭고 안 좋았던 기억이 있어 하기 싫고 춤은 춰보니 즐겁더라.”
‘가시꽃’에 이어 ‘현기증’까지 인간의 죄의식, 내면의 분노, 비극의 연속 등을 ‘이돈구의 시선’으로 닮아낸 이돈구 감독. 전작이 대중의 기대를 받았기에 차기작에도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차기작은 미스터리 판타지다. 난 미스터리를 완전 좋아한다. 때문에 ‘가시꽃’과 ‘현기증’에도 내가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표출하고 싶은 감정이 담겨있다. 물론 많이 눌렀지만 말이다. (웃음) 한국에서 쉽게 다뤄지지 않은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미스터리 판타지가. 지금 시나리오의 70% 정도 썼다.”
“대중성은 있지만 내 본연의 색깔은 절대 안 잊을 것이다. 내가 상업영화 감독이 되어도 고향은 독립영화이기에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다. 난 실험적인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다. 상업영화도 충분히 실험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다. 찍고 싶은 작품을 많이 만들고 싶은 게 꿈이다.”
↑ 사진=포스터 |
Q. 신인감독에게 있어 ‘입봉’의 의미는.
A. “차기작을 위해서 또는 영화를 찍는 게 최종 목표다. 입봉을 못하면 영화를 연출한 기회조차 없으니 말이다. 개봉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고 저예산영화라도 한 관의 상영관에서라도 상영하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영화를 찍는다. 대부분 직접 각본을 쓰고 저예산으로, 또는 상업적으로 쓴 후 투자 배급사와 제작사를 찾아가기도 한다.”
Q. 힘들게 입봉을 했지만 수상성적이나 출연 배우 등에 대한 관심만 높다. 이 같은 대중의 제자리 시선이 신인감독에게 미치는 영향은.
A. “사실 신인감독들에겐 대중의 관심도 힘들다. 아예 신인감독에게는 관심이 없는 게 대부분이다.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정말 좋다. 나 역시 전작 ‘가시꽃’보다 잘 찍어야지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현기증’을 찍을 때 신경을 안 썼다. 신경 써서 찍으면 오버해서 나올 것 같더라. 처음
Q. 신인감독들에게 필요한 건 대중의 관심?
A. “비관적인 관심 말고 용기를 북돋워주면서도 객관적인 관심이다. 난 날을 잡아서 리뷰를 확인하곤 한다. 리뷰를 통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평점은 잘 안 본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